[법학]작센슈피겔 서양법제사
- 최초 등록일
- 2005.11.08
- 최종 저작일
- 2005.11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작센슈피겔에 대한 정리
목차
I .서론
Ⅱ.본론
1.序
2.저자 아이케 폰 레프고우
3.작센슈피겔의 영향권
4.작센슈피겔의 구성과 내용
5.작센슈피겔연구사
6.작센슈피겔에서의 형법
본문내용
1.序
작센슈피겔이란 이름은 마치 부인들이 거울에 얼굴을 비쳐보듯이 ‘작센인의 거울’ 이란 뜻으로 붙인 것임은 저자 자신의 표현에서 드러난다. 저자 아이케 폰 레프고우는 처음에는 라틴어로 기록하였는데 그것은 일실 되었고,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것은 그의 봉주 팔켄슈타인배작의 요청에 따라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손수 번역한 것이다.
본서의 성립연대는 정확히는 알 수 없고 추측컨대 1215년에서 1235년 사이일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본서와 동 시대의 몇 가지 법원과의 관계에서 추측되고, 본서에는 1215년의 제 4차 라테란공의회의 결의가 고려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한으로 잡고 1235년의 마인쯔제국 란트평화령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데에서 하한기간 으로 잡는 것이다.
또한 근래의 자료비판적 연구에 의하면 본서의 라틴어 원텍스트는 1221~1224년, 독일어 제 1차 텍스트는 1224~127년, 제 2차 텍스트는 1224~1230년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작센슈피겔은 하나의 사찬의 법서이지 공적인 법전은 아니었다. 그것은 중세 저지 독일어로 쓰여지고, 서문과 란트법, 레엔법, 으로 구분되어 있다. 본서가 유례없이 광범한 보급을 보게 되고 중세 이후 독일인의 법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저서 아이케의 이름이 독일법사에 불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본서의 내용이 당시 법의 포괄적인 서술을 훌륭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라틴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일찍이 쓰여졌다는 사실에도 크게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2.저자 아이케 폰 레프고우
작센슈피겔의 저자 Eike von Repgow의 이름은 1209~1233년의 독일문헌에 군데군데 언급되고 있지만, 그 생애와 인품에 대하여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리나 여러 연구에 의하면 1180년에서 119년 사이에 Dessau 근처의 Reppichau라는 마을에서 출생하였고, 1233년 이전에 사망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기사 신분에 맞는 교육을 받았을 것이며, 특히 그의 광범한 성서지식 및 그리스도교이해는 교회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추측한다. 아이케는 사상적 폭과 심오, 명석한 법이해를 통하여 ‘독일 중세의 최대의 법률가’ 로 평가 되고 있다.
참고 자료
서적 : 서양법제사/ 최종고 저 133p~15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