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유교문화가 한국 사회에 미친 폐해와 해결방안
- 최초 등록일
- 2005.10.21
- 최종 저작일
- 2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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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교의 기원으로 시작해서 한국에 뿌리 내린
유교문화의 특성과 폐해를 중심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더불어 해결방안과 그 대책을 나름대로 적었으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유교의 출발과 왜곡
2. 유교의 폐해
(1)뒤돌아 보기 문화
(2)정, ‘성의’ 로 인한 효의 문제점
(3) 정, 응석부리기, 체면 차리기
(4) 여성을 배제하는 유교
(5) 복잡한 경어와 호칭
(6) 극복해야 할 권위주의
(7) 집단주의
(8)상상력의 저하
3. 유교의 문제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
본문내용
기원전 1324년 경, 중국의 황하유역 ‘은’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중국 황하유역, 그 중에서도 한반도 쪽에 가까운 지역들에는 수백 개의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세력이 강한 부족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상족이고 다른 하나는 후일 한반도로도 흘러 들어온 동이 족이었다. 이 두 종족은 앙숙인지라 늘 전쟁에 전쟁을 거듭했다. 고대의 전쟁은 혼령전쟁이다. 즉 각자의 토템을 두고 서로에게 저주를 퍼붓는 제례를 집행하면서 기를 죽인 후, 날카로운 화살촉을 쏘아대거나 근접전이 벌어지면 창으로 찔러대는 것이다. 때문에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무기보다는 강력하고 권위 있는 토템이나 혼령을 소유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싸움에서 상족은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자 동이족의 근거지를 떠나 좀 더 내륙 쪽으로 옮기게 되는데 이 땅이 바로 ‘은’이라는 지역이었다. ‘은’으로 상족을 이끌고 들어온 인물은 반경이라는 왕이었다. 반경은 미신을 대단히 신봉했던 인물로 온갖 잡신을 다 거느리고 있었다. 또 그가 죽자 아들인 무정 역시 황하신, 산신, 조상신, 천신 등 온갖 잡신에게 날마다 제사를 지내곤 했다. 무정에게는 아들이 여럿 있었는데, 죽을 때가 되어 그 중 하나에 왕의 자리를 물려주어야 했다. 무정은 왕위를 장자인 조강이라는 인물에게 물려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맏형인 조강 보다 동생인 조갑이 더 똑똑했던 것이다. 아버지 무정은 똑똑한 동생 조갑을 왕실에서 먼 곳으로 보내버렸다. 즉 사고 칠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년 간 숨어 지내던 동생 조갑은 마침내 쿠데타를 일으켰고 형을 해결해버렸다. 이 쿠데타를 놓고 『상서』와 관련된 여러 문헌들은 이런 기록을 전하고 있다. “ 아버지 무정이 형인 조강을 두고 동생 조갑을 왕으로 세우려 하자 조갑은 이를 피해 있다가 할 수 없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는 다 거짓말이다. 유교 문헌들, 다시 말해 유교 근본주의자들의 눈에 세습체계를 흔드는 조갑의 행동은 못마땅한 것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상서』를 서구에서는 ‘ The Book of Documents`즉, 공문서 모음집이라 부른다. 그 내용이 모두 중국의 왕실 비사이며 정치 행적의 X파일들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사계절- (1998), 최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