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사상]공자의 정치사상
- 최초 등록일
- 2005.10.02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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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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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는 당시의 저명인사로서 정치나 사회상의 중대사건이나 중요 인물에 대하여 자신의 사상과 태도를 항상 분명하게 하여 세인의 추앙을 받았다. 공자의 활동 시기인 춘추시대에는 국가 운영의 중심이었던 체제가 타락되어 사회가 극도로 혼란하였으며, 이러한 난세를 바로 잡는 데에 예(禮)의 근본인 천(天)과 인간의 의의가 재정립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공자(孔子)는 인간을 문제 삼고 인간을 그의 사상적 출발점으로 삼아 주대(周代)의 천덕사상(天德思想)을 계승 발전시켜 인사상(仁思想)을 확립하였으며 이런 점에서 인(仁)의 실현은 천성(天性)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공자(孔子)의 인사상의 배경에는 정치적·사회적 무질서의 회복, 역사적으로 주공(周公)에서 단절 또는 선왕의 도의 계승, 사회적 무질서와 사상의 빈곤이 초래하는 인성상실 등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도 자기 나름대로의 뜻을 세워 현실적 수양에 근면함으로써 드디어 성인의 경지에 일렀다.
목차
1. 시대적 배경
2. 정치적 사상
(1) 정명주의
(2) 민본주의
(3) 덕치주의
(4) 예치주의
3. 유교와 현대정치
4. 공자사상의 현대적 의의
5.결론
본문내용
예치는 덕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따라서 예치속에는 통치의 틀이 요구되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禮이다. 통치규범으로서 예는 사회질서의 확립을 제1차적 목적으로 한다. 공자는 예가 당초에 갖고 있던 종교적 성격에서 탈피하여 합리적 행위규범으로서 체계화시켰다. 합리적 행위규범이란 피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에게도 함께 적용되는 것이다. 그것은 예가 갖는 사회적 통합기능과 일체감 고양기능과 연계된다. 공자시대 周末社會는 권력정치적 성격을 갖는 사회이기 때문에 권력을 소유한 者들간에 투쟁의 시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통합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고 혼란의 연속 이였으며 국가나 만족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간에 일체감도 없었다. 공자는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예라는 보편적 행위규범을 통해서 바로 잡으려 했다. 보편적 행위규범으로서 예는 좁게는 가족사회의 질서 확립, 넓게는 국가사회의 무질서극복을 위한 규범으로서 사회적 제제력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위배할 때 법과 같은 타율적 구속력이 있어서 형벌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가지나 자율적 제제력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사회적 행위의 기준으로 孝와 悌를 기본으로 삼았다. 따라서 효와 제라는 사회적 행위기준은 윤리적으로 개인적 행위와 분리 불가능함을 나타내주고 있다. 공자는 개인적 행위기준이 효와 제를 사회적으로 확대 ․ 적용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국가윤리를 사회윤리로 확대함으로써 사회적 무질서를 수습하려고 통치자의 일방적인 통치규범으로서가 아니라 통치자와 피치자가 공감하고 이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범으로서 예를 의미부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는 통치자의 원할 한 통치를 가능케 하기 위한 일방적 규범이라는 오해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며 공자의 예치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는 봉건지배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배 ․피지배계급의 공통된 가치인식에 그 전제를 두고 있는 만큼 민주주의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참고 자료
손대호, 「선진유교 사회사상에 관한 고찰」, 성균관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전세영(1990),「공자의 정치사상에 관한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Richard Wollheim(1968), de Crespigny and J. Cronin,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