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문화와 예술] 구성주의가 바우하우스 운동에 끼친 영향
- 최초 등록일
- 2005.07.21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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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성주의가 바우하우스 운동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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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구성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에서 건축, 조각, 회화, 공예의 여러 분야 에 걸쳐 일어난 전위적인 추상미술운동, 그 이름이 나타내고 있듯이, 외계의 대상에 대한 재현을 일체 거부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환원된 조형 요소의 조합으로써 작품을 구성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는, 본질적인 조형 요소를 중요시하여 쓸데없는 장식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즉 그것은, 건축에 있어서는 기하학적 추상주의로 이어진다. 특히 건축․조각에 있어서는 금속, 유리, 그 밖의 근대 공업이 낳은 새로운 소재를 구사하여, 참신한 공간 표현을 하였다.
특히 이 운동은 조형활동에 의한 사회 건설의 참여를 주장하며, 정치성과도 적극적인 결합을 보인다. 1919년에 타틀린이 설계한《제3인터내셔널 기념탑》 계획안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밖에 절대주의의 화가 말레비치나 리시츠키, 조각가인 나움 가보와 페브스너 형제, 로드첸코 등이 그 대표적 작가이다. 이 구성주의 운동은 1920년대 서유럽에 퍼졌고 건축, 조각, 회화뿐만 아니라 무대 예술, 상업디자인 등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바우하우스 운동을 통하여 세계 각국에 전해졌다.
바우하우스 그룹들이 펼친 기하 추상운동은 과학과 예술, 실생활의 효율적 접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기하추상의 형태를 생활 디자인에 응용하거나, 혹은 그 미술 자체로서 시민 생활 곳곳에 뿌리내리려고 하였다. 세계 제1차 대전이후 세계미술의 중심은 파리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구성주의, 네덜란드의 데 스틸그룹, 독일의 바우하우스를 통해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러시아예술에 모더니스트의 개념이 일기시작한 것은 1917년 혁명부터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큐비즘과 미래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개념이 급속도로 입체-미래주의로 변형됐고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를 발전시켰다. 비록 1930년대 스탈린과 주다노프의 공산권치하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로 변모하지만 지하에서는 일부화가들이 추상미술을 고집했다. 독일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1919년 설립한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 응용미술및 건축학교는 응용미술가를 위한 훌륭한 교육기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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