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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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적에 의해 규정되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힘들어했으나 무의미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의 죽음은 자연사(적의 창검에 베어지는)이길 바랬다. 병신년 의병장 김덕령이 장살된 것처럼 임금의 칼에 죽는 그런 무의미함을 감당할 수 없기에.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장계를 올린다. 충무공이 지니고 있는 칼이 ‘징징징’ 우는 것은 자신을 살아있게 한 생명의 은인. 적(왜군) 앞에 나아가 다시금 싸워야 하는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의 한탄을 칼이 대신 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갈등 속에서 그가 내리는 결론은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란 것이다.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는 자신. 오로지 자신의 충이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자함이었을 것이다.
이순신은 교서에 절하며 ‘…전하, 전하의 적들이 전하를 뵙기를 고대하고 있나이다. 신은 결단코 전하의 적들을 전하에게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적들은 전하의 적이 아니라 신의 적인 까닭입니다….’ 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가 아니고 적의 적으로서 자신과 임금이 같은 위치에 서고 싶지 않다는,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임금도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 너무 무리한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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