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조선후기 역서의 간행과 반포
- 최초 등록일
- 2005.06.10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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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權象監과 曆書의 발간
1. 觀象監官員과 曆法 연구
2. 曆官의 선발과 曆書의 발간
Ⅲ. 역서의 반포와 사용
1. 발간 수량과 배부
2. 실생활과 역서의 사용
Ⅳ. 맺음말
본문내용
조선시대 曆書를 간행했던 기관은 觀象監이다. 觀象監은 역서의 제작 외에도 천체의 운행과 曆計算, 時報, 기상 현상의 관측과 지도 제작이라는 과학적 업무, 그리고 길흉과 관련된 占星과 擇日 및 풍수지리 등의 업무를 관장하던 조선시대 天文官署이다. 관상감은 음양학이라는 특정분야의 전문인들이 근무하는 기술관서로, 이런 분야의 일들을 관장하는 관서로는 유일했으므로, 관상감의 관원들은 많은 경우 거의 평생을 관상감에서 근무하였다.관상감에 근무한 觀象監官員은 중인신분으로 전문적인 기술직 종사자였다. 전통시대 天文學의 성격상 農事 節期에 대한 예보 기능 외에도, 天人合一的 성격이 있었기에 특수한 업무로 인해 日食이나 月食, 五緯 등 천문현상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예보가 중요하였다. 때문에 曆書의 편찬에 역 계산을 정확히 하지 못할 경우나 역서를 誤記했을 경우에도 이들은 그에 대한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조선시대 역서의 반포는 왕정의 급선무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날짜를 계산하는 데 있어서 중국 曆書와도 비교해야 했으므로 觀象監官員들의 책임은 막중하였고, 조선후기 曆法의 연구와 曆書의 발간이 점차 觀象監의 업무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1653년(효종 시헌력의 도입은 당시 천문학적인 견해의 차이를 넘어 서양의 과학을 따르는 것은 正度가 무너지는 것으로 보며 도입을 반대하였다. 이에 효종은 조선의 왜란과 호란이라는 정치, 사회의 전반에 걸친 혼란 속에 당시 팽배해 있던 배청 감정을 자극하여 국민적 일체감을 이루고 이를 왕권강화의 전략적인 도구로 삼고자 한다. 개력을 통해 왕조의 권위를 내세우고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시헌력을 도입한 것이다.; 정성희, <<우리 조상은 하늘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서울: 책세상, 2000), pp. 53-63.
4)에 개력한 曆法인 時憲曆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授時曆의 겉옷만 씌운 大通曆은 날이 갈수록 오보만 거듭하였고, 時憲曆 도입 초기 당시 崇禎 戊長曆(1628) 天正冬至를 사용하다가 康熙甲子年(1684) 천정동지를 역원으로 삼아 변동이 심하였다.
참고 자료
나일성. <<한국천문학사>>.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정성희. <<우리 조상은 하늘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서울: 책세상, 2000.
________. <<조선후기 우주관과 역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1
허윤섭. <<조선후기 관상감 천문학 부문의 조직과 업무>>. 서울대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