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민족말살정책
- 최초 등록일
- 2005.05.22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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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머리말
1. 일제 식민주의 교육정책
(1) 1910년 이전
(2) 1910~1919년
(3) 1919년~1938년
(4) 1938~1945
2. 한국민의 교육적 저항
3. 일제의 식민지 언어정책
* 맺음말
※ 참고문헌 ※
본문내용
1. 일제 식민주의 교육정책
(1) 1910년 이전
일본이 한반도를 영구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그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펴나간 부문이 교육분야였다. 정치·경제적 독립성을 박탈하는 데 성공한 일본은 한반도 주민의 문화적·정신적 독립성을 말살하고 그들을 영구히 식민지 피압박민의 상태로 묶어두기 위해 철저한 식민지 교육정책을 펴나갔다. 이를 위해 강점 직후 1차 조선교육령을 만들었다.(1911.8)
조선교육령은 조선에서의 교육목적을 ‘교육에 관한 칙어’의 취지에 바탕을 둔 충량한 국민을 만드는 데 두고, 조선의 교육을 보통교육과 실업교육·전문교육으로 한정했다. 조선인에게 일본어를 보급시키기 위한 보통교육과 농·상·공업 분야의 하급 직업인을 만들기 위한 실업교육, 그리고 약간의 전문교육에 그치고 대학교육은 허용하지 않았다. 교육내용은 합방직후부터 식민지교육의 성격을 철저히 드러낸 데 반해 교육시설면의 확충은 보잘 것 없었다.
(2) 1910~1919년
일본의 식민지 교육정책은 민족적 색채가 짙은 사립학교를 탄압하고 관·공립학교를 더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선교육령에 이어 공포한 사립학교규칙(1911.10)으로 사립학교에 대한 인가조건을 훨씬 강화함으로써 사립학교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대한제국 정부가 인가한 숭실학교, 이화학당의 대학과를 모두 폐지했고, 박은식·양기탁 등이 국채보상운동으로 모은 6백만엔으로 대학설립을 신청했으나 허가하지 않았다.
1910년 이후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까지의 기간동안의 교육제도는 다음과 같은 기구를 통해서 실시되었다.
참고 자료
이현희, 1991, 〈일제의 조선 통치책과 한국인 의식에 미친 영향〉, 《일제 강점기하의 사회와 사상》, 신원문화사.
최옥경, 1993, 〈일제의 대한 식민지 언어정책의 배경 언어와 고찰〉, 전남대학교.
강만길, 1995, 《고쳐 쓴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정재철, 1997, 〈일본 식민주의 교육 정책과 한국 민족의 교육적 저항〉, 《한국근대사》 I, 지식산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