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 (편창당시,사관,가치와 한계)
- 최초 등록일
- 2005.04.24
- 최종 저작일
-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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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봄을 통해서 비교하는 글입니다.
97용이예요
목차
-도입-
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대하여 알아보자.
(쓰여진시점과 관점, 누가썼는지어떤내용인지 등포함)
② 이번에는 삼국사기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하동문)
③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
④ 그렇다면 우선 삼국사기의 큰 틀을 이루고 있는 유교사관과 중국 중심 사고방식 등 삼국사기가 가지고 있는 사관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⑤ 다음으로 삼국유사의 사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⑥ 마지막으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다시 한번 정리해 비교해 보고 이 사적들이 가지는 가치와 한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정리-
본문내용
① 우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대하여 알아보자.
<삼국유사>는 삼국의 역사를 총괄한 역사책도 아니고, 불교사 전반을 포괄하고 있지도 않다.<유사>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역사가의 기록에서 빠졌거나 간과된 것을 새롭게 드러내고 부각시킨 자유로운 형식의 역사책이다. 때문에 이 책이 신라 중심, 불교 중심으로 쓰여 있고 북방 지역이 소홀히 취급되고 있으며, 간혹 인용한 책의 기록과 일치하는 않는 결점을 갖고 있음에도 그로 인해 그 의의가 감소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군신화를 비롯한 숱한 설화와 전설들, 지명, 성씨, 민속, 신앙 등은 역사학뿐만아니라 민속학, 금석학, 고문학 연구의 귀중한 원천이 되고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실린 탑, 불상, 사원 건축에 관한 기록은 한국 고대미술의 주류를 이루는 불교미술 연구에 소중한 자원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1266∼89)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로서 1999년 11월 19일에 부산유형문화재 31호로 지정되어 현재 부산 금정구 청룡동(범어사)에 보관중이다. 활자본으로, 5권 2책으로 구성되어있다.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현재까지 고려시대의 각본(刻本)은 발견되지 않았고, 완본으로는 1512년(조선 중종 7) 경주부사(慶州府使) 이계복(李繼福)에 의하여 중간(重刊)된 정덕본(正德本)이 최고본(最古本)이며, 그 이전에 판각(板刻)된 듯한 영본(零本)이 전한다.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整齊)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이므로 체재나 문사(文辭)가 《삼국사기》에 못 미침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史料)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