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경산공원 (景山公園)
- 최초 등록일
- 2005.04.07
- 최종 저작일
- 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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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경산에 관한 자료입니다
목차
1.경산공원
2.여행후기 1, 2
3.나의 생각
본문내용
고궁의 신무문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곳이 경산공원이다. 세 개의 정자가 산의 정상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특색인데, 비교적 평평한 베이징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경산공원은 매산(煤山)이라고도 하는데, 매(煤)란 중국어로 석탄을 말한다. 이 산은 원(元)대에 만들어졌는데, 그때 석탄을 쌓아올리고 그 위에 흙을 덮어서 만들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것은 베이징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연료에 곤란을 겪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아무도 아직 시굴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진위는 알 수가 없다. 또는 인접한 북해를 판 흙을 쌓은 것이라든가 고궁의 호(壕)에 해당하는 통자하(筒子河)를 판 흙으로 만들었다고도 말해진다. 경산의 높이는 90m지만, 길도 좋고 급비탈이 아니기 때문에 간단히 오를 수 있다. 산 위의 ‘만춘정(萬春亭)’에 서면, 고궁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황금색의 기와가 널리 물결치고 있는 고궁의 광경은 특히 훌륭하다.
북경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경산공원 북경성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황실 정원이다. 전체 면적은 23㎢이며, 소나무와 삼나무가 울창하고 고목들이 하늘 높이 솟아있다경산공원은 이미 수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17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명 영락(永樂) 18년(1420년)에 석탄과 자금성 통자하(筒子河)의 진흙들을 가져다가 원나라 건축물인 영춘각(迎春閣)의 옛 터에 쌓아 두었는데, 이것이 하나의 흙산을 이루게 되었으며 당시에는 "만수산(萬壽山)"이라고 불렸다.
또한 명 숭정(崇禎) 17년(1644년)에는 이자성이 북경성을 공격했을 때로, 당시 황제였던 숭정은 궁궐을 빠져나온 후 이 곳 경산에 올라와 스스로 나무에 목을 걸고 죽었다고 전해진다.(§ 중국황제는 왜 목매 죽었나? 이자성이 어떤이유로 난을 일으켰나? ⇒ 이자성이 명을 멸망시키고 왕이되어 중국을 통치하려 난을 일으켰다. 이때 숭정제는 처자식을 죽이고 자신은 나무[커다란 회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다. 이후에 오삼께가 만주족을 끌어들여 난을 일으킨 이자성을 죽이고 청을 건설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