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육] 박정희와 장준하 비교연구
- 최초 등록일
- 2005.04.06
- 최종 저작일
-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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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걸어온 길
1) 어린 시절
2) 일제시대
3) 해방정국
4) 정권수립 이후의 삶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Ⅱ. 걸어온 길
1) 어린 시절
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에서 가난한 농민인 박성빈과 백남의 사이에서 5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박성빈은 무과에 급제한 사람이었으며, 20대에 1984년에 일어난 동학혁명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출소한 뒤에는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집안일에 무심했으며 술로 일생을 보내고 가산을 탕진하였다. 그래서 박정희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는 1932년에 구미보통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였고 졸업 후에는 당시 경상도 인재들만이 갈 수 있는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5년 뒤에는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3년간 교사로 재직하였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시 학적부에 의하면, 박정희의 성격은 음울하고 불성실하며, 활발하지 않고 불평이 많다는 등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되어 있다. 행동평가도 수우미양가 중 ‘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교련시간에는 사격, 나팔, 육상 등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결국 박정희는 교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민 끝에 군인이 되고자 하였다. 그는 나이가 많아서 가고 싶었던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1940년에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써서 만주군관학교 교장에게 보내고, 자신의 형 박상희의 도움을 받아 호적을 고쳐 나이를 줄였다. 그리하여 1940년 3월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입학한 해 여름에는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게 된다. 대구사범학교 시절에는 저조한 성적을 보이던 박정희가 적성에 맞는 군관학교를 다니면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1942년 3월에 수석으로 졸업하게 된다.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덕분에 우수한 졸업생에게만 주어지는 일본육군사관학교 3학년에 편입할 수 있는 특전을 받게 된다. 그래서 1942년 4월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거기서도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여 1944년 4월 일본육군사관학교 57기생 중 3등으로 졸업하였다.
장준하는 박정희보다 1년 늦은 1918년 8월 27일 평북 의주에서 기독교 목사인 장석인과 김경문 사이의 4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민족주의 의식이 강하여 일제의 식민주의적 국민학교 교육에 비판 적었으며 전통적인 서당교육을 선호하였다.
참고 자료
한영우선생정년기념 논총간행위원회,『한국사 인물열전 3』,서울 돌베개, 2003 김삼웅, 『한국현대사 뒷얘기』가람기획, 1996권영섭의 홈페이지 http://www.daejin.or.kr/home/yakwon/장준하기념사업회 http://www.peacewav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