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를 찾아서] 발해를 찾아서
- 최초 등록일
- 2005.03.23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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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해와 관련있는 나라들은 모두 발해사를 보는 관점이 다 틀리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발해사를 모두 자국의 입장에서 발해새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들은 불가피한 것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자국의 입장을 먼저 설정하여 놓고 발해사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밖의 부분들에 대해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데에 있다. 자국과의 관련성에 집착한 나머지 발해라는 나라 안으로 들어가 발해인의 입장에서 그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발해국의 밖에 서서 자기쪽으로 잡아 당기는 데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발해라는 나라를 자체적으로 남겨진 사료가 전혀 없는 나라, 그런 까닭으로 실체가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는 나라, 이것이 발해사의 현재 모습이다.그러면서도 단일 종족으로 구성된 나라가 아니고 고구려계와 말갈계 사람들이 혼합되어 구성된 나라였기 때문에, "주체를 고구려인으로 보느냐?" 아니면 "주체를 말갈인으로 보느냐?" 에 따라서 그 견해가 달릴수 있다.
더구나 발해의 지금의 영토는 중국 만주, 러시아 연해주, 그리고 우리나라 북부지역에 걸쳐있다. 따라서 영토상으로 따지게 되면 발해사가 중국사에 속할 수도 있고, 러시아사에 속할수도 있고, 우리 나라 역사에 속할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발해 지역은 어느 나라에서건 변방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서 그 지역에서 그 나라를 정통으로 계승한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들이 전적으로 어느 나라 역사에 속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더욱 어렵게 해준다.
그래서 각 나라들은 역사적 사실 규명보다는 역사적 해석을 앞세워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발해사를 말갈의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펴게 된 배경은 다르다. 서로 발해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할려고 하는데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국에는 발해사를 연구하면서 우리가 가질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발해의 유적과 유물들을 직접대할수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여러 유적들이 조사되었고, 그 중에서는 발해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를 제공하여준 것들도 있다.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정혜공주 묘지와 정효공주 묘지이다. 그러나 중국은 외국 학자들, 특히 한국 학자들에게는 발해 유적을 조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중국은 폐쇄적인 사회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있었지만, 민족 문화에 대해서 이렇게 까지 심한줄은 몰랐었다. 한국 학자들에게 발해 유적조사를 금지하는 이유는, 발해사를 우리 역사라고 하는 것을 마치 만주의 영유권을 빼앗으련느 심산으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측의 발해사에 대한 주장은 부여,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역사에 끌어들이려는 중국측의 주장과 상반된다. 그러므로 비록 중국과 북한이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양국이 우호적이라 하더라도, 학문적으로는 서로를 비난하는 입장에 서있다고 할수 있다.
그리하여 한국측의 학자들에게 대단히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물은 물론 유적마저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것이 이러한 이유도 있는듯 하다. 중국 학자들이 발해 유적과 유물을 독점하는 유리한 위치에 있지만, 이것들을 잘 활용하여 발해사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까지는 아직 미흡하고, 공식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학자들의 시각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구도 아직은 체계화되어 있지 못하다.
참고 자료
발해사
발해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