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과, 프랑스학과, 프랑스문화의 이해수]프랑스역사
- 최초 등록일
- 2005.03.20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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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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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프랑스의 역사
선사시대의 프랑스
프랑스 국토에 인류가 정주하기 시작한 것은 유럽에서도 이른 편에 속한다. 구석기시대의 여러 문화의 명칭(무스티에·오리냐크·마들렌 등)은 모두 프랑스의 지명(地名)에서 유래한다. 아키텐주(州) 도르도뉴현(縣)의 크로마뇽에서는 현생인류(現生人類)의 인골(人骨)이 발견되었고, 이들 크로마뇽인(人)이 남긴 동굴과 벽화는 남서부(특히 베제르 하곡의 라스코 동굴) 지방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에는 다른 인종이 북부 프랑스에 들어왔는데, 브르타뉴 지방에 남아 있는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 즉 카르나크의 열석(列石), 바욘의 돌멘·멘힐·크롬레크(스톤서클) 등이 그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다.
BC 1800년경에는 그들의 자손으로 추정되는 남서부 지방의 이베리아인, 알프스를 넘어 침입한 리구리아인(人), 북동부 지방에 이주해온 벨기에인(人) 등이 청동기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 뒤에 도나우강(江) 방면으로부터 켈트인(人)이 북프랑스로 이동해 들어왔다. 철기시대에 이르면 프랑스 중부는 거의 켈트계(系) 갈리아인(人)에 의해 점령당하게 된다. 또한 지중해안에는 페니키아인(人)이 무역을 하러 나타났다. BC 600년경에는 그리스인(人)이 마실리아(마르세유)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리스 문화 전파의 중심지로 삼았으며, BC 2세기부터는 로마의 세력도 침투해 왔다. 이와 같이 프랑스는 유사 이전부터 인종의 집합소였다.
프랑스 역사의 시작
BC 58년부터 카이사르의 로마군(軍)이 갈리아 지방을 정복하기 시작하였고, 베르킹게토릭스의 반란(BC 52)도 보람 없이 그들에게 굴복하였다. 그 결과 로마화된 갈리아가 이루어 낸 것이 ‘갈로로망 문화’이다. 150년경부터는 남부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고 리옹에서는 박해도 있었다. 3세기 중엽, 게르만인(人)의 부족 중 하나인 프랑크족(族)이 갈리아 지방을 침입하기 시작하였다. 5세기가 되자 반달·수에비·알란 등 여러 종족이 이주해 왔고 서(西)고트는 툴루즈에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부르군트도 알자스로부터 론강(江)·손강(江) 유역으로 진출하였다. 프랑크의 살리 지족(支族)이 북동부에 침입하여(427) 로마의 동맹군으로서 세력을 신장하였다.
로마와 게르만의 연합군은 훈족(族)의 왕인 아틸라의 침략을 격퇴하였으나(카탈라우눔의 싸움, 451), 서로마는 얼마 안 되어 멸망하였다. 살리 지족의 클로비스는 메로빙거왕조의 프랑크 왕국을 건설하고(481), 시아그리우스(로마인의 왕이라고 불린 로마인 정권 최후의 갈리아 지방 통치자)를 격파, 로마의 지배를 벗어난 후 정통파로 인정된 그리스도교(아타나시우스派)로 개종하여 로마 교회와 손을 잡았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 분할상속제 때문에 왕국이 분열되고, 7세기 말부터는 무능한 왕들이 속출하여 실권은 궁재(宮宰:Major Domus, 서양 중세 최고의 宮廷職)의 손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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