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 정창원
- 최초 등록일
- 2005.02.27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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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내 자료로는 부족해서 일본 사이트와 일본 원서를 참고해 쓴 기말고사 대체 레포트였습니다. 기말고사 대체였던 만큼 내용도 구성도 잘 되있습니다. 성적은 A+받았습니다. 좋은 자료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Ⅰ. 시작하는말
Ⅱ. 쇼소인(正倉阮)
1. 쇼소인
2. 쇼소인의 유래
3.보고에 대해서
(1) 정창
(2) 서보고・동보고
(3) 성어장
Ⅲ. 보물에 대해서
1. 보물의 가치
2. 보물의 특징
3. 보물과 고대사와의 관계
Ⅳ. 맺음말
* 참고자료 *
본문내용
고대 일본은 한반도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사실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일본의 내량 도다이지에 있는 쇼소인이라는 창고는 756년 쇼무 천황이 사망하자 왕비가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49재에 맞춰, 남편이 평상시 애용하던 숟가락에서부터 칼, 거울, 무기, 목칠공예품, 악기 등 6백여종을 헌납한 이후 왕실의 보물창고가 된 곳이다.
일본학계는 소장품들이 일본과 당에서 만든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지만 이 물건들은 거의 통일신라에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차츰 베일을 벗고 있다.
그러나 쇼소인 소장품은 일본연구자들에게도 개방이 되지 않으며 정확한 수량파악조차 안된 상태다. 그러나 「8세기 일본의 미술공예품 제작 능력」 「재료의 당시 일본내 생산여부」 「당시 일본의 조선항해수준」 「일본 사신이 당에서 가져온 물품」 「출토된 통일신라 공예품과 쇼소인 공예품의 비교」등을 살펴보면 일본의 억지임을 알수 있다.
고려대 명예교수인 최재석 교수의 주장을 살펴보면 “가위,유리잔,칼,사리기 등 얼핏 외형이나 새겨진 문양만 봐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유물이 들어있는궤나,그 궤를 싼 비단까지도 통일신라제“라며 단적인 증거로 원래 7백여점이었던 8세기 당시의 소장품이 후대의 왕과 권력자들이 하나둘씩 빼내가는 바람에 지금은 1백여점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었 다.
결국 일본측의 주장대로 일본에서도 능히 제작할수 있는 물품이라면 왜 왕이 탐냈겠냐는 얘기다. 또 최교수의 말에 따르면 당시 일본은 항해술조선술의 낙후로 동북아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던 통일신라의 도움 없이는 당까지 직선으로 항해할 수도 없었고, 당 영토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도 없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참고 자료
정창원 소장품과 통일신라, 최재석, 일지사, 1996.1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웅진출판, 1993.8
조선일보 1996년 1월 19일자 김한수 기자의 인물 서평
일본 웹 쇼소인 홈페이지 http://shosoin.kunaicho.g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