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 다산 정약용의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4.12.23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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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대표적인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당시의 성리학적 학문 풍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학문의 탐구에 몰두하여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다산의 사상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天’의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가에 있어서의 天의 개념은 원초적인 개념인 自然天과 上帝天, 宋學적인 개념인 理法天의 양 갈래로 나눌 수가 있다. 그런데 정약용은 주희를 비롯한 송학자들이 주장하는 천지만물의 主宰者인 太極, 理 등은 경전적 근거를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정통적인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늘의 주재자는 상제가 된다. 그것을 천이라고 하는 것은 國君을 단지 國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감히 손가락질하여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저 푸른 유형의 하늘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 지붕처럼 덮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그 등급도 땅 물 불과 똑같은 등급이 되는데 지나지 않으니, 어찌 우리 인간의 性 道의 근본이겠는가? 太極圖의 한 둥근 동그라미는 六經에 보이지 않는다. 이는 靈이 있는 물건인가, 아니면 아무런 지각도 없는 물건인가, 텅 비어있는 불가사의한 것인가? 천하의 영이 없는 물건은 주재자가 될 수 없다 ... 그런데 하물며 텅 비어있는 태허의 한 理로서 천지만물을 주재하는 근본으로 삼는다면 천지 사이의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정약용, 1994: 383-384)
. 다산은 주희의 ‘理一分殊’에 의하면 性을 理라하고, 天命 또한 理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아무런 의지와 지각이 없는 단지 준칙으로서의 理라면 理를 두려워하고 경외해야할 이유가 없게되므로 詩經에 “밝고 밝은 덕이 아래에 있으면, 빛나고 빛나는 명이 위에 있다”고 하였고, “넓고 큰 상제는 아래 백성의 임금이다” 하였으며 “하늘의 상제가 나를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 하였고,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그 나라를 보존한다”고 하였다. 옛 성인들이 하늘을 말할 적에 저와 같이 진실되고 분명하였는데, 지금의 사람들이 하늘을 말할 적에는 이와 같이 아득하고 황홀하니,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정약용, 1994: 384)
天命의 性을 理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理라는 것은 본디 옥석의 결이니 옥을 다듬는 자는 그 결을 살핀다. 그러므로 다시 가차하여 다스리는 것을 理라 한 것이다 ... 어찌 일찍이 형체가 없는 것을 理라 하고 형체가 있는 것을 氣라 하며, 天命의 性을 理라하고 七情이 발한 것을 氣라 하였는가? ... 가만히 글자의 뜻을 궁구해보면, 모두 脈理 治理 法理의 뜻을 假借해서 만든 글자이니 곧바로 性을 理 라고 하는 것이 고전에 근거가 있는가? (정약용, 1994: 336-338)
子思가 ⌜중용⌟을 저술하면서 분명히 “하늘이 명한 것을 性이라 한다” 하였으며, 맹자가 “그 마음을 극진히 하는 자는 그 性을 안다”하였는데, 지금 心, 性, 天 셋을 모두 一理라고 하면, 모기령이 이른바 “理가 명한 것을 理라 한다”는 말도 경박한 말이 아니며, 맹자도 마땅히 “그 理를 극진히 <<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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