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생애] 세계를 감동시킨 무희, 최승희
- 최초 등록일
- 2004.12.16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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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승희의 생애 업적 작품 세계등 최승희에 대한 모든것이 있는 레포트 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최승희의 생애
2. 최승희가 걸어온 예술적 삶
3. 최승희 예술의 특징
4. 최승희의 작품성격
5. 최승희에 대한 바람직한 평가 방향
Ⅲ. 결론
본문내용
1911년 11월 24일 경성에서 아버지 최준현과 어머니 박용자 사이의 사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최승희의 아버지는 가무를 좋아하는 한량이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 강점 뒤에 진행시킨 토지 조사사업에 따라 경성근교에 소유한 전답을 빼앗기고 가세가 몰락하자 아버지는 포목상을 하기도 하고 서당 선생 노릇을 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아 성적이 우수하여 소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숙명여자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집안의 경제사정이 나빴으나 성적이 우수하여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았으며, 숙명여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음악학교와 경성 사범학교의 진학을 희망했으나 연령 미달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최승희가 춤에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1926년3월 20일 일본의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내한 공연을 오빠 최승일과 함께 보고 난 후부터였다. 벅찬 감동을 안고 무대 뒤 분장실로 찾아갔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조선의 무용가로 성공하겠으니 지도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리하여 이시이 바쿠의 일행과 함께 연구생으로 일본에 건너가서 피나는 훈련이 시작하였다.
1년 6개월 후인 1927년 가을, 최승희는 이시이무용단의 서울 공연에 포함되어 최초의 고국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이시이의 배려로 <세레나데>를 솔로로 추게 되는데, 이때부터 국내 언론들은 최승희의 성공적인 첫출발을 알리는 격려와 함께 '조선의 꽃'이라고 대서특필 하였다. 1929년 여름 3년 만에 이시이로부터 독립한 그녀는 서울에 돌아와 무용 연구소를 열고 연구생을 모집하여 훈련에 돌입한다. 이때 나이 열아홉인 그녀를 옆에서 도운 이가 오빠 최승일 이었다.
참고 자료
이애순, 『최승희 무용예술 연구』, 국학자료원, 2002.
정수웅, 『최승희』, 눈빛, 2004.
정병호, 『춤추는 최승희』, 뿌리깊은 나무, 1995.
김찬정, 『춤꾼 최승희』, 한국방송출판, 2003.
정운현,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개마고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