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신분변동과 사회 생산적 발달
- 최초 등록일
- 2004.11.25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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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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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序論
本論
Ⅰ. 春秋時代의 背景
1. 춘추 중기 이전까지의 社會秩序
2. 춘추 중기 이후의 社會變動
Ⅱ. 戰國時代의 形成과 그 課題
Ⅲ. 春秋戰國時代의 社會 生産的 發達
1. 鐵製農耕, 牛耕의 出現과 水利灌漑事業의 發達
2. 農業生産力의 發展과 社會ㆍ經濟의 變化
Ⅳ. 春秋戰國時代 士의 變化
結論
參考文獻
본문내용
序論
BC 771년 이민족 견융(犬戎)의 침입으로 유왕(幽王)이 피살되면서 서주시대(西周時代)는 막을 내린다. 이듬해 유왕의 아들 평왕(平王)은 정(鄭)ㆍ진(晋) 등 일부 제후의 도움으로 뤄양[洛邑]에서 왕조의 명맥을 잇는 데 일단 성공한다. 이른바 주(周)의 동천(東遷)이다. 이후 BC 221년 진(秦)의 천하통일까지를 동주(東周)시대 또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라 일컫는다.
춘추전국시대는 서주시대의 봉건제도(封建制度)가 해체되고, 진 황제 아래에서의 중앙집권체제가 형성되어 가는 과도기적 시대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서주(西周) 이래의 제후국이 100여 개나 존속(存續)하고 있어서 전통적 기풍이 강하였으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들어와서는 강국이 약국을 병합하여 전국칠웅(戰國七雄)을 성립하였다.
이 시대는 말할 나위도 없이 중국사의 흐름에서 볼 때, 하나의 현저한 격동과 전환의 시대이며 또한 사상ㆍ제도 및 기타 문화사상 이른바 ‘중국적인 특질의 형성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각 국이 봉건제도에서 벗어나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었음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춘추전국시대를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 자료
傅樂成, 『中國通史』, 지영사, 서울;1998
변인석, 『중국고대사회경제사』, 한울역사학강좌, 서울;1994
서울大學校東洋史學硏究室, 『講座 中國史Ⅰ』, 지식산업사, 서울;1989
李鎔琳, 「春秋戰國時代 士의 變化에 關한 硏究」, 誠信女子大學校 大學院, 서울;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