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사] 중국 문화대혁명과 수정주의
- 최초 등록일
- 2004.09.01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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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문화대혁명과 수정주의를 모택동과 등소평의 노선 갈등 및 전개 과정을 중심으로 조사한 리포트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로 공들여 만들었습니다. 주석도 자세히 달아놓았구요. 위의 주제로 찾으시는 분들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필요하신 분들께 많은 도움 되셨으면 하네요.
목차
제1장. 서론
제2장 대약진운동부터 문화대혁명까지
1) 대약진운동
2) 문화대혁명
3) 문화대혁명 기간 중 모택동의 오판
4) 대약진(大躍進)운동과 문혁(文革)의 실정(失政)
제3장 모택동 사상
1) 모택동 사상의 개념
2) 모택동 사상의 실용주의적 측면
3) 사회주의개조(社會主義改造)와 강경노선(强硬路線)
4) 노선대립의 심화
제4장 등소평의 수정주의(실용주의)
1)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기준
2) 해방사상(解放思想)과 실사구시(實事求是)
제4장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제1장. 서론
1966년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대혁명은 짧은 시간에 걸쳐 전 중국을 휩쓸면서 중국인민을 10여 년간 큰 재난 속으로 몰고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것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알지 못했다. 일반인민들은 물론이고 공산당의 간부들조차도 상당한 기간 동안 전혀 이해하지도 못했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으며, 힘을 기울이지도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최고층의 지시, 중앙의 문건, 최고 지도자의 연설을 통해 단지 ‘정신을 이해’하고, 거리와 골목에서 이곳저곳의 소식을 듣고 동향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특수한 현상은 문화대혁명으로 하여금 시작부터 특수하고 난해한 특징을 갖게끔 만들었다.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을 일으켰을 때 천하대란(天下大亂)을 통해 천하대치(天下大治)를 이룰 수 있다 생각했다고 한다. 진충밍,시쉬옌, 2000『문화대혁명사』, 나무와 숲 p453
그러나 현실과 희망은 엇갈렸고 10년간의 동란은 온 국가에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끼쳤다. 이처럼 재난이라고 표현되는 문화대혁명의 기간 동안 중국은 크게 두 명의 지도자의 노선 아래서 혼란을 거듭했고 그 두 인물은 다름 아닌 모택동과 등소평이다.
모택동의 경우에는 소련식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으면서 중국의 현실에 맞는 특수한 사회주의 건설이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것이 모택동 사상으로 종합되었으며 이 사상은 단지 모택동 개인 사견이라기보다는 모택동의 기본 방향 설정과 다수 의견이 종합된 중국 공산주의 건설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등소평의 경우 모택동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모택동 스스로가 모택동 사상에서 이탈한 오판을 했다고 평가함으로써 등소평의 수정주의 노선과 모택동 사상이 대립되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모택동과 등소평 사상에 대한 개관적이 이해, 그리고 두 사람이 어떤 측면에서 노선차이를 가졌으며 그 갈등 양상이 어떤 전개 과정을 거쳤는가 하는 점이다.
참고 자료
1. 진춘밍(金春明) 외, 2000 『문화대혁명사』나무와 숲
2. 중국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1990『정통 중국현대사』, 사계절
3. 小島普治 외, 1999 『중국근현대사』, 지식산업사
4. 정석현, 1989「등소평체제의 실용주의노선에 관한 연구」
5. 이영식, 1994 「등소평의 현대화 정책에 관한 연구」
6. 김익도, 1987 「모택동 사상: 마르크스주의의 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