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광개토대왕릉비의 검토
- 최초 등록일
- 2004.07.06
- 최종 저작일
-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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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광개토왕비의 재발견
1. 능비의 재발견
2. 비문의 내용
Ⅲ. 비문 변조설
1. 이진희의 비문 조작설
2. 중국에서 바라보는 광개토왕비
3. 4c 말 왜의 신라공격
Ⅳ. 비문 연구
1. 비문연구의 진전
2. 비문연구의 현단계
3. 비문연구의 문제점
Ⅴ.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오는 왕의 공식 명칭이다. 국강상은 무덤이 통구 주변 동강 평원에 자리잡고 있는 데서 나온 말이고, 광개토경은 그 공적을 말하는 것이며, 평안 호태왕은 왕에 대한 경모의 정을 나타낸 것이다. 그 칭호만큼, 국토를 넓혀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광개토왕의 재위 22년간(391~412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장수왕이 414년(장수왕 3년)에 현재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 퉁거우(通溝)에 세운 것이 바로 광개토대왕릉비이다. 이 광개토왕비는 실로 융성기 고구려사의 연구, 나아가 한국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제 1급의 금석문 자료일 뿐 아니라, 고대 한․일 관계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으뜸가는 자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요성만큼이나 비문의 판독 및 해석을 둘러싸고 끊이지 않는 논쟁을 한․중․일 3국은 벌여왔고, 아직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역사 속에서 묻혀버린 광개토왕비가 다시 발견되어 재조명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내용에 대해서 알아본 후, 보이지 않는 글자의 판독문제로 인해 그것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다. 또 나아가 현재 광개토왕비는 어떻게 연구되고 있고,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다.
참고 자료
李基東, 「硏究의 現況과 問題點」, 『韓國史市民講座』 3집, 일조각, 1988.
李亨求, 「廣開土大王陵碑 硏究 - 所謂 辛卯年記事와 庚子年記事를 中心으로」, 『韓國館論叢』 45집, 1987.
이덕일, 이희근,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pp 28~37, 김영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