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실학사상과 김정희의 실사구시
- 최초 등록일
- 2004.06.22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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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학사상과 실사구시를 중심으로 조사한 리포트 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필요한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Ⅰ. 실학사상
1. 조선 후기 유교의 특질과 그 내재적 비판
2. 새로운 학풍으로서의 실학사상
3. 영(英), 정조(正祖) 시대 실학파 전개
① 실학파
② 성호학파 - 실학의 제1기(18세기 전반~후반)
③ 북학파(이용후생파) - 실학의 제2기 (18세기 후반)
④ 실사구시파 - 실학의 제3기 (19세기 전반, 영.정조 이후)
2) 영, 정조 시대 - 실학파의 전개기
① 조선의 사회, 경제적 변화
② 정치적 전개
4. 실학(實學)에서 개화(開化)로의 전향(轉向)
Ⅱ. 실사구시의 새로운 지표- 완당 김정희
2. 실사구시의 특징
1) 실사구시설
3) 존고와 사승. 가법의 문화축적론
4) 궐의. 신언의 정신
3. 실사구시적 학문경향
1) 금석학
2) 역학
3) 예를 통한 실사구시의 실천
4. 완당 철학의 사상사적 의의
본문내용
2. 새로운 학풍으로서의 실학사상
18세기를 중심으로 17세기 후반기에서 19세기 전반기에 걸치는 실학사상은 이미 허학화(虛學化)하여 현실과 유리된 조선 유학의 결함을 내재적으로 극복하고 여러 모순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열기 위한 새로운 변통사상으로서 등장하였다.
실학사상은 전통 주자학에 대립하는 사상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분류’ 또는 일종의 ‘개신유교(改新儒敎)로서 였으며, 실학파 학자들도 각각 우수한 성리학자였다. 그 중에서도 정약용은 기존 유학에서 스스로를 해방하여 독자적인 경학(經學)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그럼에도 실학파는 적어도 16세기 이후에 조선 유학계를 양대학파로 나누던 사단칠정(四端七情)논쟁의 견해에서 보는 한 퇴계나 율곡의 유파에서 제쳐지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는 실학파의 경세사상이 홍대용을 예외로 하면 강재언, ‘한국의 개화사상’, 비봉출판사, p53 저자의 생각으로는 실학파 가운데서 가장 ‘기(氣)’를 중시한 학자는 홍대용이며, 일반적인 학자들의 사상적 평가는 경세사상의 측면에서 되어야 하며, 그 진보성이 곧바로 ‘기’의 중시(重視)와 연결되지는 않는 다고하였다. 예컨대 ‘기일원론자’였던 서경덕(徐敬德)이나 임성주(任聖周)는 사회사상 및 실천에 있어서 오히려 현세도피적 도학자였다는 것이다.
유물론적 기(氣)의 철학을 기초로 하고 구축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성호학파의 총수 이익은 남인계통 학자로서 ’사단칠정‘ 논쟁에 있어서도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더욱 주리적으로 순화하여 이이의 ’기발이승(氣發理乘)‘과는 반대로 ’이발기순(理發氣順)일도설(一途說)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실학자인 까닭은 경세사상에서 이이 및 유형원의 계보를 발전시킨 것 때문이다. 이익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이이의 경세책은 당면 시무(時務)에 부응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유형원의 발상은 봉건체제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는 전제(田制)에 대한 개혁으로부터 시작하는 체제 그 자체의 근본적 개혁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익은 재야생활로 일관한 남인계통의 유형원과 서인(노론)파의 원류인 이이의 학풍을 이어받아서 결과적으로, 성리학에서는 이황, 경세사상은 이이, 유형원의 것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 참고 도서 ※
1. 강재언, 『韓國 近代史硏究』, 한밭출판사, 1982
2. 강재언, 『 韓國의 開化思想』, 비봉출판사, 1981
3. 한국철학사 연구회, 『한국 실학 사상사』, 다운샘, 2000
4. 김길환, 『朝鮮朝 儒學思想硏究』, 일지사,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