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의 역사적 변천] 한 도시의 역사적 변천(행정.지리.문화.경제)
- 최초 등록일
- 2004.06.17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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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하여도 전주시는 인구 50만을 밑도는 중소도시에 불과하였다. 엄연히 전주시는 전라북도 내의 행정,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는 물론 광역기능권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수가 다른 도시에 비해 현격히 적고, 주요 산업이 농업에 치중되어 있는 관계로 이러한 명성에 비해 초라한 느낌이 받기 쉬운 편이었다.
1993년 현재 전주시의 인구수는 고작 55만여 인구에 불과하였으며 인구밀도도 현격히 적고, 교통량과 산업의 발달 정도 또한 그 크기가 상대적으로 미미하였다. 남한정부가 들어선 1960년대 이후에 인구가 18만에 이르러 전국수위권의 도시였으나 70년대와 80년대를 아우르며 수도권과 경상권의 급속한 성장을 미처 따라가지 못해 현재의 위상에 머무르고 있다.
이를 시대적 상황으로 설명해보면 해방정부 당시 전주와 군산 등 전라북도 내의 도시가 전국에서 수위권의 도시였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의 산업분포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에 호남평야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던 전주시는 전국 7위라는 높은 순위를 차지하였으나 1993년 현재 전국 12위까지의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식민지 시절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미곡이 일본으로 수송되기 위해 집결하는 군산시 또한 당시 남한 도시별위상 9위로 전주시 다음으로 큰 도시였으나 새로운 상권의 형성으로 신흥도시로 성장한 광주, 대전시가 전주시에 비하여 성장률이 높았기 때문에 전주시와 함께 10위권 밖의 도시로 낮아지게 되었다.
1962년 당시의 행정구역 상의 중심지와 주변지에 대한 구분은 지정학적 입지가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당시의 중심지인 경원, 중앙, 고사, 전, 태평, 서노송, 중노송, 교동은 주변지인 진북, 동서학, 금암, 인후, 중화산, 덕진, 전미, 호성동 등에 비하여 그 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우아, 송천, 팔복, 평화 ,효자, 삼천동은 저습지, 밭, 논 등으로 개발의 정도가 매우 미미하여 인구밀도가 매우 저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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