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원산부흥운동 -부흥운동의 원류(原流)
2. 타지역으로 확산되는 성령의 바람
3. 점차 보편화 되기 시작한 부흥운동
4. 평양 대부흥운동의 준비
5. 평양 대부흥운동
6. 한국교회 부흥운동과 성장의 몇 가지 특징
본문내용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후의 첫 10년간에는 신자의 증가율이 극히 미미하였다. 이 시기는 말하자면 선교를 위하여 지리적인 답사를 하고 씨를 뿌리는 시기였다. 선교를 시작한 지 5년째인 1890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회에서 각각 11명의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해에 세례 교인 수는 장로교에 119명, 감리교에 36명, 모두 합하여 155명이었다. 김영재, 〈한국교회 성장의 역사와 전망〉, 신학지평 제7집, 1998 봄
그러다가 한 5년이 지나면서부터 교인 수가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1895년에 개신교의 세례 교인은 582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의 3분의 2가 남자였다. 학습 교인, 즉 세례 지원자는 567명인데, 그 중에서 여자는 5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초기에 남자의 수가 많은 것은 여자들이 아직 바깥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시대적인 상황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아 세례를 받은 자의 수가 50명이었고 55세대의 가정이 교회로 들어왔다. 42개의 교회와 전도소 중 선교회의 관할 아래 한국인 전도사가 목회를 하는 곳이 6개 처였다.
참고 자료
참고도서
1) 김영재,〈한국교회사>, 개혁주의 신행협회, 1992
2) 김영재,<한국교회 성장의 역사와 전망>, 신학지평 제7집, 1988봄
3) 김해연, <한국교회사>, 성광문화사, 1993
3)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백년사> 보진재
4)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5) 박용규,<평양대부흥운동>, 총신대학교 출판부
6) 백낙준, <한국개신교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7) 안병동, <1907년 대부흥운동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연구>,
8) 오흥철, <1907년 기독교 대부흥운동의 역사적 고찰>, 경희대학교사학과
9) 이덕주,<초기 개신교사에 있어서 한,중 기독교교류>, 한국기독교사 연구
10) 이상규, <교회부흥의 역사와 교훈>
11) 이영헌, <한국기독교사>, 컨콜디아사, 1978
12) 홍석훈, <1907년 대부흥운동의 배경과 그 영향에 관한 연구>,
서울신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