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대사] 포에니 전쟁과 그라쿠스 시대
- 최초 등록일
- 2004.04.09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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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그라쿠스 형제가 위기에 처한 공화국을 재건하기 위해 빈민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타락한 지배 귀족층에 대항하여 투쟁한 진지한 개혁가들이었는가, 혹은 정치권력을 갈망한 선동가들이었는가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들의 개혁의도 자체는 진지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개혁하고자 시도했던 문제들은 매우 심각한 현실의 필요와 관련된 것이었고 그 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을 모색해야 할 문제들이었다. 개혁과정에서 야기된 정치폭력, 호민관들이 평민회를 통해 원로원 지배귀족들을 무력화 시켜 포풀라세스-민중파-의 선례가 된 점 등은 분명히 공화정몰락을 촉진시킨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시 국가경제의 위기가 몰려온다고들 한다. 주식이 하락하고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물가가 오르는 등의 현상은 과거의 로마와 너무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예측과 그래서 미국이 농업을 포기하지 않고, 농촌을 살리는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아마도 과거 로마의 역사에서 배운 교훈으로 현재와 미래에 닥쳐올 위기에 예측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목차
1. 제 1차 포에니 전쟁
2. 제 2차 포에니 전쟁
3. 로마의 제국 형성 과정
4. 그라쿠스 시대의 곡물 위기
5.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농지법
6.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곡물배급 정책
본문내용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33년 사이에 로마 공화정은 여러 면에서 전성기였다. 신분투쟁이 종결된 후인 이 시기의 정치체제는 귀족과 평민출신의 원로원내 신귀족에 의해 기본적으로 안정을 유지하였다. 이 시기의 로마인들은 이탈리아 반도내부의 외부민족들인 에트루리아인이나 삼니움인들을 제압하고 이탈리아 반도내의 통일을 이룩해 놓고 있었다. 시칠리아 섬의 메시나라는 도시국가에 의해 시작된 제 1차 포에니 전쟁은 이러한 로마에게 지중해 제패라는 터전을 마련해 준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발부리에 금방이라고 탁 부딪칠 거 같은 위치의 시칠리아 섬은 로마의 입장에서나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거점이라 할 수 있다. 메시나는 최강국인 시라쿠사의 공격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 ‘로마 연합’의 가맹국이었던 레기움(오늘날의 레조)의 영향을 받아 로마에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농업국이었던 로마는 군단이 바다를 건넌 적이 없었다. 원로원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로마의 최고 결정기관인 민회에 결의 자체를 요구하게 하여, 시민권 소유자 즉 병역 의무자들로 구성된 민회가 내린 결의는 메시나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시작된 제 1차 포에니 전쟁-페니키아인과의 전쟁이라는 뜻이다-이 23년간 지속되게 된다.
참고 자료
1.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 2』, 한길사, 1993
2. R.H. 리델 하트,『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마니아북스, 1999
3. 허승일,『증보 로마공화정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5
4. 김경현,『서양사 강의』, 한울, 1992
5. 차전환,『서양고대사 강의』, 한울, 1996
6. 허승일,『서양사론』,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