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개화기 역사서술의 시대적 , 사상적 배경-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역사인식의 변화
3. 개화기의 역사서술 (근대사학으로의 과도기)
(1) 안종화
(2) 1894년 이후 국사교과서 편찬 (김택영과 현채)
(3) 장지연
4. 결론
본문내용
개항 후 개화사상가로부터 근대적 역사인식의 단초가 마련되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로서 근대사학이라고 불리울 만한 역사서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사회진화론은 근대사학을 성립시키는 전제를 마련해주기는 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 근대 역사학이 성립되는 것은 사회진화론을 뛰어넘는 '민족의식'이 성립하였을 때에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 민족주의 사학이 성립하기까지는 중세사학적 특성을 극복하려는 수많은 노력이 있었던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본 발제문은 바로 그러한 노력들, 즉 중세사학에서 근대사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중세사학을 극복하며 근대사학을 지향하고 있었던 개혁기의 역사서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따라서 이들의 역사서술은 그 자체로 근대사학이라고 불리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근대적인 서술방식이 시도되고, 역사의 주체가 지배자에서 피지배자로 확장되며 그 일환으로서 민족이 강조되기 시작하는 것, 그리고 중세적인 중화사상에서 탈피하여 한국사의 독자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었던 것, 또 인과관계에 의한 발전론적인 역사인식이 시작된 점 등은 이 시기 역사서술이 근대사학으로 한 발짝 다가서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주목되어야 한다. 그러한 '변화'가 계속되고 그 속에서 질적인 발전을 이룩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사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근대사학은, 비록 미흡하고 많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개혁기의 과도적 역사서술의 단계를 거친 이후에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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