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기 해제
- 최초 등록일
- 2022.03.27
- 최종 저작일
- 20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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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청일전기』 번역 및 간행 경위
2. 『청일전기』의 번역 대본과 주요 내용
3. 『청일전기』의 서술 방식
4. 『청일전기』의 번역 목적과 인민계몽 방안
5. 옥중 번역활동의 의미와 『청일전기』의 사료적 가치
본문내용
1. 『청일전기』 번역 및 간행 경위
1899년 1월 9일 이승만은 박영효 지지세력의 고종폐위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1원 20일 전덕기와 주시경이 넣어준 권총을 가지고 탈옥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 경무청에서 심한 고문을 받고 2월 1일 한성감옥으로 이감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10kg의 무게의 나무칼을 목에 차고 손발은 수갑과 족쇄에 묶인 상태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렸다. 이어 7월 11일 그는 평리원 재판에서 곤장 1백대, 종신형의 선고를 받았다. 이날부터 이승만은 목과 팔다리를 묶었던 사슬을 벗고 석방을 기약할 수 없는 무기한 수감생활에 들어갔다.
이승만의 수감생활은 1900년 2월 14일 김영선이 감옥서장에 임명되면서부터 크게 변했다. 김영선은 부임하자마자 한성감옥서의 옥정 전반에 대한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대한제국의 근대화정책과 잠옥 행정을 개선하라는 외국공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우선 김영선은 부하 권리들로 하여금 죄수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도록 하였다. 또한 죄수들의 급식을 개선하고, 가혹한 학대를 금지하고, 옥리들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고, 조명시설을 확충했다. 이중 조명시설의 확충은 이승만의 옥중 문필활동과 직결된 것이었다.
감옥서장 김영선은 이승만에게 지필의 사용을 허가하는 한편, 외국선교사들이 넣어준 책을 읽거나 신문·잡지의 논설을 집필하거나 저술·번역 활동을 벌이는 것을 묵인하였다. 아울러 그는 이승만의 집필작업(書役)에 대해 보상금까지 주면서 이승만 가족의 생계비를 지원하였다. 여기에 감동한 이승만은 죽는 날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옥중에서 이승만은 번역작업을 벌였다. 당시 그는 청국 상해에서 미국 선교사 알렌과 낙방선비 채이강이 많은 책을 저술·번역·출판하여 청국인들을 계몽시킨 것을 매우 중시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