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대부흥운동을 중심으로 한국교회 부흥운동
- 최초 등록일
- 2022.02.09
- 최종 저작일
- 2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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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평양대부흥운동을 중심으로 한국교회 부흥운동"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시대적 배경
2. 역사적 전개 - 1903년
3. 1907년 대부흥 운동
4. 1907년 대부흥운동의 성격과 의의
1) 양적 성장과 신앙 성숙
2) 공동체성 형성
3) 한국 기독교의 신앙 성격 형성
4) 전도 운동과 선교 운동에 영향을 줌
5) 사회 변혁을 주도함
6) 연합운동 추구
5. 종합적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부흥이라 하면 흔히 숫자적 개념을 지닌 양적 성장을 의미하지만 참된 부흥은 인간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포괄적인 개념으로 생명과 각성을 의미한다. 부흥은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간섭 혹은 죄인들과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 은총으로 정의된다. 1859년 웨일즈 부흥 운동이 있었다. 이때 부흥을 어떻게 정리했는가 살펴보면 ‘사람들로 충만한 교회, 하나님으로 충만한 사람들’로 정의했다. 이러한 이해를 가진 마틴 로이드 존스는 “부흥이란 성령께서 비상하게 역사하실 때 교회의 생활 속에서 경험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였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부흥이 한국교회 안에서도 나타났다. 알렌이 입국한 후 10년동안은 복음이 핍박속에 전해지는 고투의 시간이었다. 1894년부터 1895년의 청일 청일전쟁 이후 한국교회의 수적 성장이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03년과 1904년 그리고 1906년에 간헐적인 부흥이 있었고, 1907년을 맞이하여 평양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에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는 단순한 수적인 성장만이 아니라 영적인 변화와 각성을 포함한 참된 부흥이었다. 김영재 교수는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은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친 운동으로 전국을 휩쓸어 새로 자라나는 한국교회에 영적 생활의 기틀을 잡게 해 주었다.”고 평가한다. 이상규 교수 역시 “1907년에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부흥 운동은 성령의 특별한 역사였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한국교회 초기 부흥의 역사를 논할 때 1907년 평양에서 시작된 대부흥이 그 중심에 서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1907년 평양에서 시작된 부흥의 열기는 계속해서 확산되어 가는데 1909년 ‘100만인 구령 운동’이라는 거교회적 전도운동을 전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참고 자료
다시 쓴 한국교회사, 이상규, 개혁주의출판사, 2018.
한국교회사, 김영재,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17.
평양 대부흥이야기 1907, 박용규, 생명의말씀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