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학부는 4.4의 성적을 유지하며 조기 졸업하였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석사 학위 수료 때까지
4.3 이상의 성적을 유지할 만큼,
대학/대학원 생활 중 어느 것 하나 대충하거나 허투루 한 적 없습니다.
그만큼 자료의 퀄리티도 허투루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직접 작성하거나 만든 자료만 업로드합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가면극의 기원
3. 중국의 나례와 나희
3.1. 고나시대, 그리고 나례의 기원
3.2. 금나시대, 그리고 가면극으로서 나희의 형성
3.3. 중국의 나례와 지신밟기
4. 한국의 나례와 나희
4.1. 고려시대의 나례와 나희
4.2. 조선시대의 나례와 나희
5. 나례의 구나형식과 가면극의 연극적 형식
5.1. 나례의 오방귀무・오방처용무와 가면극의 오방신장무
5.2. 나례의 사자춤과 가면극의 사자춤
5.3. 나례의 소매와 가면극의 소무・소매각시
5.4. 나례의 처용・역신과 가면극의 취발이・노장
5.5. 나례의 십이지신・역귀와 가면극의 말뚝이・양반
5.6. 나례의 구나형식과 팔먹중춤의 연극적 형식
5.7. 나례의 구나가면과 가면극의 연잎・눈꿈쩍이가면
5.8. 나례의 구나가면과 가면극의 연잎・눈꿈쩍이가면
본문내용
1. 들어가며
본디 나례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려시대 때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이렇게 우리 땅에 들어오게 된 나례는 궁중, 관아, 민간 가릴 것 없이 성행하였고, 그 전승 과정에서 가면극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자료1>은 가면극에 대한 두 가지의 흥미로운 점을 시사한다. 근대 한국사회에서의 산대놀이(이 기사에서는 가면극이라는 의미로 사용)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주고 있음이 첫째이고, 나아가 가면극이 나례의 유풍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음이 그 둘째라 할 수 있다.
우선 <자료 1-1>을 보면 난세를 평정한 (서양의) 영웅들을 열거하며 이들의 업적을 놀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어지러운 세상을 산대도감연희(산대놀이)에 비유한 것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당시 근대 한국 사회에 놀이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나례와 산대연희(여기서는 가면극의 의미로 사용)의 관련성에 대해 드러내고 있는 부분을 짚어볼 수 있다. <자료 1-2>는 앞선 <자료 1>의 기사 전문 중, 가면극과 나례의 관련성에 대해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2. 가면극의 기원
이렇듯 가면극은 나례와 연관이 있으며, 그렇기에 그 기원에 관한 연구 역시 나례, 그리고 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산대희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안확(1932)은 처음 가면극의 산대희 기원설을 제시한 학자이다. 조선시대의 가면희는 처용무, 산대희 둘밖에 없는데 이 둘은 당대의 창조가 아니라 전대의 것(儺儀, 儺禮)을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중 신라시대에 소규모로 만들어진 것은 처용무, 고려조에 내려와 대규모로 만들어진 것은 산대희라고 주장한 것이다. 즉 처용무, 나례, 산대희는 동일한 것을 달리 부르는 것이며 산대희가 조선시대의 산대도감극 즉 가면극의 전신이라고 본 것이다.
참고 자료
단행본
전경욱, 『한국의 가면극』, 열화당, 2007.
김재철, 『조선연극사 影印本』, 민족극회 남사당, 1970.
이두현, 『한국의 가면극』, 일지사, 1979.
김학주, 『한・중 두 나라의 가무와 잡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4.
논문
윤광봉(2010), 「한국假面劇의 形成過程 :儺禮의 變異樣相을 중심으로」,『비교민속학』 제9집, 비교민속학회, pp.83-113.
陶立璠(1994), 「중국의 假面문화」,『비교민속학』 제11집, 비교민속학회, pp.407-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