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군현제의 논의와 해석
- 최초 등록일
- 2020.06.29
- 최종 저작일
- 2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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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봉건‧군현제의 논의와 해석"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봉건의 의미
3. 봉건‧군현제 논의와 인식 비교
1) 조선의 봉건‧군현제 논의와 인식
2) 중국‧일본의 봉건‧군현제 논의와 인식
4. ‘봉건‧군현사회론’의 의의와 한계
5. 결론
6. 참고 문헌
본문내용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역사에서 주로 이용한 개념은 전통적인 봉건‧군현제 논의이었다. 이런 현상은 국가체제에 대한 매우 오래된 논의 주제였다. 이는 20세기 초엽까지 당대의 유력한 지식인들을 통해 계속되었다. 때로는 군현제의 장점이 논의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봉건제의 우수성이 제시되기도 하는 등, 군현제와 봉건제는 논자들 사이에서 그 우열에 대해 많은 논쟁이 이루어져왔다. 다만 당시 시대적 과제와 논자들이 처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목적성을 가지고 논의되었으며, 그럴 때마다 그 논의가 갖는 정당성이 변화하였다. 19세기까지의 봉건‧군현제 논의는 국가체제로써 논의되었다. 정치권력의 집중과 분산, 군주와 신하의 위상, 復古와 時勢사이에서의 선택 등 국가와 사회 문제에 다양한 방향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특히 18~19세기 봉건‧군현제 논의와 관련해서는 명말청초 시대가 주목되는데, 이 시기 명청교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하여 국가체제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조선후기 지식인들 또한 이 시기 봉건‧군현제 논의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봉건‧군현을 둘러싼 논의는 서양의 충격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국가구상과 관련하여 활발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현상이 최초로 생긴 것은 일본에서였는데, 이는 서구의 입헌군주제나 공화제를 의식한 것으로서, 종전의 봉건‧군현론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봉건‧군현제 논의는 그동안의 동아시아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면서 나타난다. 즉 이데올로기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서구의 feudalism이라는 말이 ‘봉건제’라고 번역됨에 따라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봉건 개념이 포기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나타난 변화는 역시 일본에서 가장 먼저 차용하였는데, ‘봉건제’ 개념으로 일본사를 이해하려는 견해가 등장한 것이다.
참고 자료
조동걸‧박찬승‧한영우 엮음,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