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 논불골표
- 최초 등록일
- 2020.04.12
- 최종 저작일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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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유 논불골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한유의 생애와 그의 문학
3. 한유의 배불(排佛)과 시대적 배경
4. 「논불골표」의 단락과 「논불골표」가 지닌 의의(意義)
5. 결론
본문내용
당대의 문인이자 관료인 한유(韓愈 768~824)의「논불골표(論佛骨表)」는 당 헌종(唐 憲宗)원화(元和) 14년(819), 황제가 붕상(鳳翔) 법문사(法門寺)에 가서 부처의 뼈를 모셔오는 것을 명하자 형부시랑(刑部侍郞)에 있던 한유가 그 부당성을 피력하면서 커다란 논란을 야기했던 글이다. 이 사건의 중요성 때문에 이 글은 역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명문장들을 뽑아서 만든 〈당송팔자백선(唐宋八字百選)〉의 처음을 장식하는 글로 당당히 선보이고 있는 명문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했던 부분은 세 가지이다. 엄연히 유교적 군신간의 질서가 존재하던 당대의 현실에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어 역린(逆鱗)이라고도 볼 수 있는 황제의 불교를 숭상하는 것을 비판함으로써 유교적 덕목인 충(忠)이 무엇인지 나타냈다는 점과 사회지도층인 사대부의 관점에서 삿된 것이라 할 수 있는 불교의 폐해를 지적해내어 민생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강문호, 「唐 中期 士大夫의 排佛論 - 韓愈의 論佛骨表를 중심으로」, 경주사학 제 38호,
경주사학회, 2013,
노장시, 「韓愈歐陽修 兩人의 排佛論 小考 - 原道論佛骨表와 本論을 중심으로」중어중문학 제34집,
한국중어중문학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