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정치성격과 근대화 논쟁
- 최초 등록일
- 2020.01.10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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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 흥선 대원군
1-1) 흥선 대원군은 누구인가
1-2) 흥선 대원군의 시대배경
1-3) 흥선 대원군의 개혁정치
2 . 세계의 근대화와 흥선 대원군의 정치성격
2-1) 조선 후기 세계의 근대화 양상
2-2) 흥선 대원군의 정치와 근대화의 관계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흥성 대원군 하면 고종의 아버지로 현재 역사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개혁정치가로 기억되기보다는 쇄국정책자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본인 역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쇄국정책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근대화 시점이 늦어졌고 그 덕분에 대한제국이 제국주의를 먼저 실행하여 일본을 앞서나갈 수 있던 기회를 놓치는 것은 둘째 치고 안 겪었어도 될 일제강점기라는 수모를 겪게 한 장본인이라고 생각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인식을 새롭게 다시 한 인물 2명이 바로 광해군과 흥선 대원군이기도 하였다. 흥선 대원군이 역사에 나오기 이전에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나라가 얼마나 어지러웠는지는 대충 알 수 있다. 시대적 배경은 달랐지만 영화 간신 등을 통해 한번 절대 권력을 잡으면 어디까지 권력의 힘이 미칠 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라 밖으로는 18세기 말 세계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의 길로 접어듦과 동시에 초과 공급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있었고, 그 영향력이 동아시아에까지 뻗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본은 물론 믿었던 중국마저 세계화의 개방 요구에 문을 열 수밖에 없었던 만큼 서양 열강의 힘이 부담될 정도로 매우 큰 시기에 흥선 대원군은 역사에 등장했다. 그리고 대원군의 선택은 안으로 국가의 상태를 정비하고 힘을 키운 후에 나중에나 밖을 돌아보기로 하는 것이었다. 이에 맞춰 세도정치를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함과 동시에 여러 가지 개혁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러면서 서양 열강과 동등한 입장에서 맞이하기 전까지 일단 문을 걸어두고 있기로 했다. 바깥 외교를 무시한 채 국내 정치에만 신경 쓰는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국내 정치에는 관심을 적게 두고 바깥 외교만 하는 현 대통령의 행보와 대비되어 보인다. 둘 중 누구의 행보가 더 낫다하는 비교는 할 수 없다. 누가 국가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왔나 하는 비교도 의미가 없다. 다만 둘의 국민 지지율이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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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준, [한국사 카페2], 북멘토 출판사
한예찬, [한국사 7], 지경사 출판사
박현서, 이재철 공저, [한국의 역사 16 조선의 근대화], 한국갈릴레이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