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속] 한국의 민속에 나타난 성, 다산, 풍요
- 최초 등록일
- 2003.08.29
- 최종 저작일
- 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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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Ⅱ.본론
1. 성 신앙
2. 암각화
3. 토우
4. 놀이에 나타난 성, 다산, 풍요
Ⅲ. 결론
본문내용
1. 성 신앙
원시인들은 자기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냥을 하러 나가기 전에 잡으려고 하는 짐승의 모양을 그리거나, 그 형상을 만들어 놓고, 사냥에 성공하기를 간절히 빌면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은 주술 심리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주술 심리를 지닌 고대인들은 부족의 번성을 간절히 바라면서 아기를 낳아 기르는 여성의 성기와 유방을 매우 존귀하게 여기고, 신성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 모양을 바위에 새기거나, 모형을 만들어 놓고 새 생명의 출생과 건강, 부족의 번성을 빌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여성의 성기를 생산의 기능을 지닌 신으로 숭상하는 성 신앙이 형성되었다. 그 후, 새로운 생명의 출생은 여성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 남성의 성력이 작용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남성 성기도 신성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바뀜에 따라, 성 신앙도 여성 성기 위주에서 남성 성기 위주의 신앙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성 신앙에 따라 성기를 생명체의 출생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믿게 되었고, 성행위도 쾌락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출생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성한 행위로 믿게 되었다. 따라서 양성이 결합하지 못하면, 성적 결핍으로 인해 생명체의 출생, 번식이나 풍요가 있을 수 없음은 물론, 재난이 생긴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에서는 상징적인 성적 결합 행위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1세기 경에 매몰된 도시 봄페이의 신전벽의 조각품에 남자의 성기나 여성의 유방, 발기된 남성의 타고 앉은 여성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성 신앙이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말해 준다. 성기신앙은 세계 각지에 자연스럽게 전해 왔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려는 윤리의식 때문에 일찍부터 소멸되어 지금은 일부의 모습만 전해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