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제1차 세계대전의 전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대전 전의 세계
Ⅱ. 전쟁의 시작
Ⅲ. 대전의 경과
Ⅳ. 전쟁의 확산
Ⅴ. 러시아 혁명
Ⅵ. 아일랜드 봉기
Ⅶ. 윌슨의 14개조
Ⅷ. 독일의 갈등과 종전
Ⅸ. 종전 후의 세계
Ⅹ. 전쟁의 결과
XI.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대전 전의 세계
식민지 쟁탈전으로 여러 번의 국재 분쟁의 위기를 가진 서구 열강은 긴장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독일은 19세기 말 보불전쟁과 보어전쟁으로 확실한 열강으로 자리 잡게 되고, 프랑스나 영국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게 된다. 한편, 발칸 지역은 오스트리아, 터키, 세르비아, 러시아의 미묘한 세력다툼과 민족주의의 창궐로 인해 두 차례의 발칸 전쟁을 겪었다. 이 두 전쟁에서 세르비아가 승리하였으나 오스트리아의 방해로 인하여 팽창이 좌절되었다. 따라서 두 나라 간에는 긴장이 감돌고 있었고, 이것을 지난 발칸 전쟁으로 영토를 빼앗긴 불가리아 등이 주시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보불전쟁에서 독일에게 치욕적 패배를 당하고 알사스와 로렌지방을 내 주었던 일에 앙심을 품고 있었는데, 비스마르크의 실각 이후 두 나라간의 마찰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이 시기 유럽 국가들 간의 동맹은 동맹 측의 한 나라가 공격을 받거나 공격을 하는 일이 벌어지면 자동적으로 상대편 국가에 선전포고 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더욱이 나쁜 것은 이러한 동맹조약 대부분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동맹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는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관계였으며, 러시아는 프랑스와 동맹관계였다. 또한 프랑스와 영국도 오랜 앙숙관계에도 불구하고 동맹을 맺고 있었다. 결국 어디선가 전쟁이 발발하면 전 유럽이 전화 속으로 휩싸여 들어가게 될 상황이었고, 가장 긴장이 심했던 발칸 반도는 그야말로 유럽의 화약고였다.
Ⅱ. 전쟁의 시작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지방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왕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처가 세르비아의 범슬라브주의 비밀결사에 속하는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황태자에 대한 공격은 당연히 제국에 대한 공격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즉각적으로 이 암살의 배후에 세르비아 정부가 개입되어 있다고 단정하고, 7월 23일 11개 요구조건이 담긴 최후통첩을 급송했다.
참고 자료
조세프 나이, 『국제 분쟁의 이해』, 양준희 역(서울 : 한울아카데미, 2011)
빌헬름 몸젠, 『비스마르크』, 최경은 역(서울 : 한길사, 1976)
윌리엄 카, 『독일근대사 - 독일연방에서 제정독일까지』, 이민호, 강철구 역(서울 : 탐구당, 1986)
김선숙, 「비스마르크의 동맹, 협상정책에 관한 연구」(동아대학교 석사논문, 1995)
이영관, 「독일 제국 빌헬름 2세의 식민지 정책과 동아시아」, 『중앙사론』Vol.39(한국중앙사학회, 2014)
존 G. 스토신저,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임윤갑 역(서울 : 플래닛미디어,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