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 조선 전기의 기후
1) 조선의 기후의 중요성과 기후에 대한 가치관
2) 조선 전기의 기후
2. 본론 : 기후에 따른 임금의 인사관리
1) 조선 전기의 전반적인 기후의 중요성과 현대적 인적자원관리 관점에서 본 임금들의 정책
3. 결론 : 기후는 다방면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은 농업경제에 기반을 둔 국가로써, 무엇보다 기후가 생활영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기후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으며, 어떠한 기후환경에 놓여 지는가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였다. 예를 들어,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게 되면, 백성들은 기근을 겪을 수밖에 없었으며, 반면에, 강수량 매우 많아 홍수가 발생할 경우, 주거지를 잃어 방랑자가 되는 등 국가 전반적인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기후는 백성의 의, 식, 주에 절대적 상관관계로 존재하였다. 따라서 임금들은 적절한 기후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방안에 큰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 전기의 임금들이 인적자원관리 측면에서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대해 현대적 인적자원관리요소 즉, 인력선발, 보상, 동기부여, 성과 등과 얼마만큼 합치하는 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 조선의 기후의 중요성과 기후에 대한 가치관
조선은 ‘하늘의 기상현상이 군주의 도덕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라는 기후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 즉, 가뭄이 들어 흉작을 초래하거나, 날씨가 평년보다 지나치게 춥거나, 더운 경우를 비롯한 기상이변에 의한 재해가 발생할 시 백성들은 임금의 덕이 부족하여 하늘이 노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당대 기후를 추측 할 수 있는 프록시데이터로써의 조선왕조실록에는 ‘소격전에서 태일성을 초제하여 절후가 조화되기를 빌게 하였다.(태조 2년, 1393, 홍무 26)’, ‘하늘에 안개가 끼고, 또 더워서 시후가 정상인 상태를 잃었으니, 오로지 부덕의 소치로 그러한 것이다.(태종 16년, 1416, 영락 14)’, ‘봄철 이후로부터 바람과 눈이 절기를 어기고, 기후가 고르지 못하니 깊이 염려가 됩니다.(단종 1년, 1453, 경태 4)’라는 등의 구절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악기후 속에서 흉흉해진 백성의 민심 안정시키기 위하여 군주 스스로 기우제와 같은 형태로 수양을 하고 반성을 하며, 술을 금하고, 수랏상의 반찬을 줄이는 등의 행동을 하였다는 것을 미루어 볼 수 있다.[그림 #1 참조]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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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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