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신석기시대 취락의 구조와 변천
Ⅲ. 신석기시대 취락의 분류
Ⅳ. 취락의 변천
Ⅴ. 취락의 체계 변화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초보적인 농경의 시작으로 인해 신석기인들은 정주생활을 하게 되었고, 수혈 주거지가 등장하였다. 수혈 주거지를 기반으로 한 정주생활은 곧 취락이 형성되는 요인이 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취락은 대규모의 마을을 이루거나 소규모의 군집형태로 구성되며 이는 시기에 따라 차이를 갖는다. 하지만 남한의 신석기 유적 중 마을 단위를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은 많지 않기에 아직 초보적인 검토에 그치고 있다.(구자진 2011)
본고에서는 신석기시대 취락의 구조를 시기·지역별로 정리하고 취락 구조의 변화를 생업과 연관시켜 살펴보려한다.
Ⅱ. 신석기시대 취락의 구조
1. 신석기 Ⅰ기
신석기시대 주거지가 출토된 유적 중 Ⅰ기로 편년되고, 그 취락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은 동북지역의 서포항 유적, 대동강·황해도지역의 마산리 유적, 중부내륙지역의 암사동 유적, 중부서해안지역의 운서동 유적, 중부동해안지역의 오산리 유적과 문암리 유적이 있다.(구자진 2011)
1). 암사동유적
암사동유적은 한강의 충적대지에 조성된 대규모 마을 유적으로 30여기의 집자리를 비롯하여 야외 화덕시설, 구덩이, 토기가마 등이 조사되었다. 집자리들은 2~3기의 집자리가 모여 있는 양상을 보이면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길게 늘어선 열상배치를 띠기도 한다. 암사동 유적의 경우 주거공간과 토기생산공간이 분리된 공간배치구조로도 볼 수 있다. 즉 주거공간은 충적대지를 따라 길게 늘어선 형태로 확인되며 토기생산공간은 그 남동편의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유구 성격별로 분리된 공간배치를 띠고 있다.(구자진 2011)
2). 운서동 유적
운서동 유적은 우리나라에서는 단일 유적으로는 가장 많은 수의 집자리가 조사된 유적이다. 운서동 유적의 마을 구조는 열상배치로 판된되는 견해(임상택 2010, 구자진 2011)과 9개의 군집으로 파악하는 견해(이상복 2010)의 견해로 나뉜다.(구자진 2011)
참고 자료
구자진, 2011, 『신석기시대 주거와 취락연구』, 서경문화사
중앙문화재연구원, 2013, 『한국 신석기문화 개론』, 서경문화사
한국고고학회, 2013, 『한국 고고학 강의』, 사회평론
소상영_2011_Holocene자연환경과한반도중서부신석기시대유적의입지변화_한국신석기연구제21호_한국신석기학회
소상영, 2013, 「한반도 중서부 지방 신석기 시대 생계․주거 체계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임상택, 2006, 「빗살무늬토기문화 취락 구조 변동 연구 」, 『호남고고학보』23
임상택, 2010, 「신석기시대 서해중부지역 상대편년과 취락구조의 특징」, 『한국상고사학보』70
임상택, 2010, 「신석기시대 취락체계의 변천과 지역적 비교」,『동북아문화연구』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