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전시가교육론] 한림별곡(翰林別曲)에 대하여 - 창작시기를 중심으로에 관해 조사하는 과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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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한림별곡(翰林別曲)의 내용
Ⅱ. 한림별곡(翰林別曲)의 주제
Ⅲ. 한림별곡(翰林別曲)에 대한 기존연구
Ⅳ. 한림별곡(翰林別曲)에 대한 나의 감상 및 견해
본문내용
1. 「翰林別曲」의 高麗 高宗代 創作說
「한림별곡」은 『高麗史』의 樂志에 고려 “고종 때 한림의 여러 선비가 지은 바(高宗時 翰林諸儒所作)”라고 명기되어 있기 때문에, 『高麗史』 卷71, 志 第25 樂「俗樂」 條.
‘고려 고종대 창작설’은 의심 없이 받아들여져 왔으며, 46년간에 이르는 高宗代(1213~59)의 어느 시기쯤에 이 작품이 지어졌을까 하는 점에 관심이 쏠려 왔다. 張德順과 金東旭은 창작연대는 1215(고종 2)~16년경으로 추측되는데 1215년 5월 궁에서 최충헌에 의해 추천희가 열렸다고 한 것과 「한림별곡」의 마지막 장이 추천 광경을 읊은 것을 맞추어 보는 것 등을 근거로, 그 창작시기와 배경을 짐작하여 각각 ‘고종 2, 3년’說 張德順, 『國文學通論』, 新丘文化社, 1960. pp.122~123.
과 ‘고종 3년(1216) 5월’說 金東旭, 「翰林別曲의 成立 年代」, 『韓國歌謠의 硏究 ․ 續』, 宣明文化社, 1975. pp.121~134.
을 주장하였으며, 李明九는 고종 7년에서 17년 사이의 作으로 추정 李明九, 「景幾體歌의 歷史的 性格 考察」, 『高麗歌謠의 硏究』, 新芽社, 1974. pp.111~112.
하였다.
(1) 張德順의 ‘고종 2, 3년설’의 논거
「한림별곡」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직명 및 그 재직시기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였다. 張德順, 앞의 책, pp.122~123.
“관직의 표현이란 큰 자랑인데, 벼슬이 퍽 올라간 뒤에도 여전히 末職인 前官을 부를 리 없으니, 이는 奎報가 正言 벼슬에 있던 시대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2) 金東旭의 ‘고종 3년 5월설’의 논거
① “李正言”으로 나오는 李奎報가 ‘正言’이던 때는 고종 2년 6월부터 4년 2월 사이이다.
② “陳翰林”의 陳澕는 고종 3년 당시 ‘直翰林’이었고, “琴學士”의 琴儀는 고종 2년에서 4 년 사이에 ‘大學士’였다. 그리고 “良鏡詩賦”의 金良鏡은 고종 초년까지는 初名인 ‘良鏡’으 로 불렸고, 그 뒤에는 ‘仁鏡’으로 개명하였다.
참고 자료
金東旭, 「翰林別曲의 成立 年代」, 『韓國歌謠의 硏究 ․ 續』, 宣明文化社, 1975.
李明九, 「景幾體歌의 歷史的 性格 考察」, 『高麗歌謠의 硏究』, 新芽社, 1974.
張德順, 『國文學通論』, 新丘文化社, 1960.
성호경, 「‘翰林別曲’의 創作時期 論辯」, 『고려가요․악장 연구』, 태학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