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명나라 이갑제의 성립과 붕괴과정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이갑제 성립이전의 향촌지배
3. 이갑제의 성립
4. 명초의 향촌교화-이노인제(里老人制)의 성립
5. 이노인제(里老人制)의 형성과 그 기능 및 성격
6. 이갑제의 붕괴
7. 이노인제의 붕괴
8. 이갑제 붕괴에 따른 대응책과 향촌사회의 변모
9. 마무리
본문내용
들어가며
진․한시대 이래로 군현제도에 입각한 중앙집권적 전제체제는 시대에 따라 그 지배의 강약 및 형식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청말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간 중국 지배 체제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이것은 중국 왕조지배의 큰 특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전제체제는 그 유지기반을 위로는 천자로부터 아래로는 지주, 지현 등 소위 목민(牧民)의 관에 이르는 질서정연한 관료제도에 두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각기 하나의 독립된 작은 단위로 자체의 안녕질서와 공공이익을 도모하면서 유지·발전해 온 향촌공동체에 두어야 했다.
이 때문에 중국왕조는 그들 나름의 지배를 계속 유지 하고, 또 확고히 해 나가기 위해서 부단히 관료제를 정비해야 했기에 관료제와 향촌공동체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시켜야만 했다. 문헌상에 나타나는 주대의 六鄕大遂制를 비롯하여 진한의 什伍制, 북위의 三長制, 당대의 隣保制, 송대의 保甲制, 원대의 社制, 명대의 里甲制, 청데의 保甲制 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향촌통치제도는 주로 징세, 치안질서유지, 권농, 교화 등 국가의 여러 가지 통치 목적상에서 이루어져 왔다. 명 태조의 이러한 이념으로 등장한 명대 향촌통치제도인 이갑제의 성립과정과 내용,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중 략>
이갑제 성립이전의 향촌지배
명조에 있어서 향촌사회의 농민들에 대한 지배조직의 근간이 된 이갑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된 것은 洪武 14년(1381)년의 일이다. 그러나 명조에서는 이미 그 이전부터 황폐해진 향촌사회를 재건하여 생산력을 회복하고 사회질서의 안정을 꾀하기 위하여 각처의 유민들에 대한 무휼(無恤)과 전토(田土)의 개간을 장려하여 왔다. 그리고 시급한 국가 재정의 확보를 위해서는 백성들의 전토를 파악하고 호구를 조사하는 것에도 힘써 왔다. 그리하여 이갑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되기 이전에 취해진 제반 향촌정책들은 이갑제의 실시에 필요한 여건을 성숙시켜 놓았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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