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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 80년대의 시인
2. 본론
2.1. 비루한 출생
2.2. 종말을 맞은 사랑
2.3. 질긴 삶, 아득한 죽음
3. 결론 - 죽음만큼 간절한 삶에의 집념
본문내용
1. 서론
- 80년대의 시인 -
최승자가 시집 《이 時代의 사랑》을 펴낸 80년대는 황지우가 “갈 봄 여름 없이, 처형받은 세월”이라고 명명하고, 정과리가 “완벽한 유죄성의 시대”라고 말한 저주받은 연대였다. 1980년대는 살아남음 자체가 죄였고 부끄러움이었으며, 죽음은 빛나는 양심의 선택이라 칭송받던 시대였다. 그 만큼 인간성이 완벽하게 학살당한 시대 속에서 시인은 죽음을 노래했고 종말된 사랑에 대해 노래했으며 비루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노래했다. 죽음의 시인이라 불리는 시인이 파괴된 것들에 대해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말 그대로 ‘그럴 수밖에 없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최승자는 고려대 재학 중인 유신시대에 교지 『고대문화』의 편집장을 맡던 중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가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 후 최승자는 <홍성사> 편집부에 근무하던 중 시단에 등단하고 얼마 있다가 <홍성사>를 그만두고 번역전문가로 활동하며 시작활동에 전념했다고 한다.
이처럼 1970년대에 자신도 모르게 학교에서 쫓겨나면서 받은 시인의 정신적 고통과 상처는 시대적, 역사적,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70년대는 공포였고 / 80년대는 치욕이었다 / 이제 이 세기말은 내게 무슨 낙인을 찍어줄 것인가’ 라는 지적과 ‘80년대는 나에겐 하나의 가위눌림이었다’ 라는 진술을 통해 짐작해 볼 때, 시인은 이 시대에 ‘외부적 억압 구조, 그리고 그것으로 하여 내면에 자리잡게 된 내면적 억압 구조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시인의 고통의 기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지극히 사회적이고 시대적 상황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유신시대에 지식인들의 분노와 절망감, 그리고 시인이 느꼈을 참담함과 불행은 많은 시적 은유를 통해 나타나고 그 속에서 처참한 개인의 심정을 노래한 최승자는 80년대를 대변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참고 자료
장석주, 「고독한 자의식의 신음소리 최승자」,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최승자, 「세기말」,『내 무덤, 푸르고』, 문학과지성사, 1993.
최승자, 「가위눌림에 대한 시적 저항」,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책세상, 1989.
최승자, 「삼십세」,『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최승자, 「자화상」,『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최승자, 「이제 나의 사랑은」,『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김치수, 「사랑의 방법」
최승자, 「버림 받은 자들의 노래」,『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최승자, 「너에게」,『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최승자, 「사랑 혹은 살의랄까 자폭」,『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최승자,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