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답사자료집
- 최초 등록일
- 2017.05.27
- 최종 저작일
- 20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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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17년 3월 학술답사 당시 사용했던 해인사 답사자료집입니다.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에 내용에 문제는 없습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합천과 해인사의 역사
2) 해인사의 입지성
3) 해인사(海印寺)와 화엄종
4) 해인사의 창건설화
3.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과,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으로 유명한 해인사는 경상남도의 작은 도시 합천에 있는 가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통일신라 애장왕 3년에 두 명의 승려와 신라 왕실의 후원에 힘입어 화엄종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창건되어 지금까지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함과 동시에, 한국 불교 화엄종의 근본도량과 법보사찰(法寶寺刹)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합천과 해인사의 간략한 역사와 더불어 해인사와 화엄종의 관계, 그리고 해인사의 두 가지 창건설화를 통해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그동안 가려져 온 해인사의 숨은 이야기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2. 본론
1) 합천과 해인사의 역사
① 합천의 역사
최근 전문가들은 합천지역에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대다수의 신석기 문화는 큰 강이나 바다 주변에서 발견되어 왔기 때문에 내륙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합천에는 신석기 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설이 우세했다. 하지만 1980년대 부산동의대학교 박물관 발굴팀이 합천댐 수몰지구에서 신석기와 청동기를 비롯한 여러 유물을 발견하며, 합천지역의 신석기 문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선사시대를 넘어, 합천지역에서는 가야시기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에는 고분군에 크게 눈에 띠는데, 곳곳에는 작은 고분군이 분포한다. 이들 소규모 고분군들은 합천의 중심부에 있는 지배자의 고분군에 종속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당시 몇 개의 촌락을 거느린 소국, 즉 가야의 연맹국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가야국은 주변의 다른 가야국들과 대립하거나 신라 혹은 백제와 교섭하면서 그 세력을 성장시키다가 결국 신라의 정복으로 그 통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합천은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그들의 갖은 혈투를 지켜보며 지금까지 성장해왔다.
참고 자료
고병철, 강돈구, 허남진, 『한국의 불교 성지』, 한국학 중앙 연구원, 2013,
이상해, 「海印寺 伽藍의 象徵性에 關하여」, 『건축역사연구』4집, 한국건축역사학회, 1995.
최원식, 「新羅 下待의 海印寺와 華嚴宗」, 동국대학교, 1985.
수려한 합천, 합천박물관 http://mus.hc.go.kr/main/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웹사이트 http://www.haeinsa.or.kr/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화엄종 https://goo.gl/9bszp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비로자나불 https://goo.gl/vM4D2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