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의 매장의례
- 최초 등록일
- 2017.03.24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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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Ⅰ 청동기시대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정주 및 농경 사회의 특징으로서 묘제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묘제는 지석묘로 대표되며, 가장 밀집 분포하는 곳도 한반도이다. 이와 더불어 토광묘, 석관묘, 옹관묘 등의 각종 묘제 또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묘제는 전시기에 걸쳐 모두 쓰인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묘제가 있었다. 이러한 묘제는 거시적으로는 청동기시대의 전반적인 양상에서 정주 및 의례와 관련한 의식이 발전된 것을 유추할 수 있고, 미시적으로는 시기적으로 달리한 묘제가 각 시기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도 매우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Ⅱ 토광묘는 묘광 내부에 판석이나 할석이 없는 것도 있지만, 장벽에 한 매 혹은 수 매의 판석이나 할석이 놓이는 사례도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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