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신사임당의 생애와 예술
1) 신사임당의 생애
2) 신사임당의 예술
3. 신사임당에 대한 인식의 변화
1) 16세기 : 화가신씨(申氏)
2) 17세기 : 부덕(婦德)의 신부인(申婦人)
3) 18세기 : 율곡의 어머니
4) 19세기 : 모성(母性)의 신사임당
5) 20세기 이후
4.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담론이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함’이란 의미로 어떤 대상에 대한 평가 또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신사임당은 뛰어난 예술·학문적 재능을 지닌 화가였다. 또한 율곡 이이의 어머니였기에 생애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 시대의 여성이 본받아야 할 표본으로 계속해서 재평가 받아왔다. 이 글에서는 신사임당에 대한 그 시대의 평가, 시각인 신사임당 담론의 변화양상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그 당시에 추구한 여성상의 변화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신사임당의 생애와 예술
1) 신사임당의 생애
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이며, 1504년(연산군10년) 10월 29일에 외가인 강릉의 북평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송정(松亭) 신명화,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생원 이사온(李思溫)의 외동딸이었다. 어머니 용인이씨는 서울의 신명화에게 시집을 갔지만 이사온이 외동딸을. 떼어놓고 싶어 하지 않아 사위와 딸을 본인의 집에서 살게 했고 남편 신명화도 그 말에 따랐으므로 사임당은 강릉 외가에서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중 략>
2) 신사임당의 예술
사임당의 회화에 관한 문헌기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율곡이이 또는 그의 동시대의 인물들이 쓴 사임당에 관한 짧은 기록들이며 둘째는 현재 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들에 쓰인 발문이다. 신사임당에 관한 연대기 중 가장 이른 기록은 아들 율곡이 지은 「선비행장(先妣行狀)」이다.
“어머니는 어릴 때 이미 고전을 깨우쳤으며······. 바느질과 자수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셨다. 일곱 살 때 이미 어머니는 안견의 산수화 양식을 따라
산수화를 그리고 먹으로만 포도를 그렸다. 이들은 매우 절묘하여 아무도
감히 흉내내지 못하였다.”
이를 통하여 사임당이 안견이 그린 그림 양식을 따른 산수화와 묵포도를 즐겨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들의 주제는 우리나라의 어느 여류화가들에 비해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산수화와 묵포도 이외에도 그녀가 그렸다고 전해져오는 그림들은 초충(草蟲), 화조(花鳥), 묵죽(墨竹), 묵매(墨梅) 등 폭넓게 걸쳐져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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