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청계천복원사업으로 인한 도심환경변화
- 최초 등록일
- 2003.07.06
- 최종 저작일
- 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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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계천복원사업으로 인한 도심환경변화
목차
1. 청계천의 역사
2. 청계천 복원 사업의 현황
가. 복원의 필요성
나. 비용
다. 현재 진척단계
3. 청계천 복원 사업의 구간
4. 청계천 복원 사업이 도심 환경에 미치는 영향
가. 자연 환경적 영향
나. 문화적 영향
다. 정서적 영향
라. 풍수지리학적 영향
5. 청계천 복원과 물관리의 문제점
가. 자연형 하천이란
나. 자연과 인간이 함께 원하는 하천을 위해
6. 바람직한 방향
가. 충분한 준비
나. 합리적인 접근이 필요
7. 마치며
가. 지속가능한 하천
나. 역사생태시민공간
다. 시민들의 의견수렴
라. 착공시기
참고문헌 및 자료
본문내용
1. 청계천의 역사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으로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연장 10.92km의 도시 하천이다.
청계천 유역은 총 면적 50.96㎢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1394년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도성 안을 지리적으로 구분했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구분하는 상징적인 경계선으로 작용했다.
청계천을 복개하여 그 터를 이용하려는 계획은 1926년에도 수립되었다. 대광교에서 주교정까지를 철근 콘크리트로 덮어서 1만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이 곳에 택지와 상가 위락시설을 조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청계천을 복개할 경우 홍수시에 배수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기각되었다.
청계천의 전면 복개 구상은 1935년 최초로 발표되었다. 당시 경성부의 마치다 토목과장은 청계천을 전면 복개하여 도로로 만들고 그 위로 고가철도를 놓는 구상을 발표했다.
청계천의 전면 복개안은 1940년 일제가 확정해 놓은 것이었지만 전쟁에 쫓기던 일본이 이를 완수하기란 불가능했다. 일제가 지배하던 기간 중에 복개된 구간은 광화문사거리에서 광통교까지의 구간에 불과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까지는 정치적 혼란기로 건설 전반이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따라서 서울시 하수로는 거의 방임 상태였으며 하수로 유지사업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의 재정 상태였다. 이어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역사상 유래 없는 참화를 당하였고, 12,400m의 하수로 시설도 피해를 보았다.
1955년에는 광교 상류의 135.8m의 청계천 암거공사를 실시하여 일제강점기에 종로구 계동에서 광교 사이의 일부를 복개한 후 첫 번째 복개공사를 실시하였다. 이후 청계천에 대한 본격적인 복개공사는 1958년 5월 25일에 착공하여 1961년 12월에 완공하였다. 당시의 청계천 복개공사는 광교에서 동대문 오간수다리(평화상가측)까지 시내 한복판을 가로 흐르는 길이 2,358.5m, 폭 16∼54m의 청계천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개하였다. 이 방대한 공사는 완성되기까지 총 16억 6,170만 환의 공사비가 소요되고 연 24만 2천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및 자료
『수도권 공간 연구』권용우, 한울아카데미
『변화하는 수도권』권용우, 한울아카데미
『월간경실련』
경실련 7월 착공 반대 홈페이지
http://www.ccej.or.kr/nojuly/
청계천 복원사업 추진 홈페이지
http://www.metro.seoul.kr/kor2000/chungaehome/seoul/main.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