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시대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
목차
1. 조선시대의 처와 첩
1.1. 조선시대의 처첩질서(妻妾秩序)
1.2. 처(妻)의 확고한 위치와 부부의 협력
1.3. 고전에 형상화 된 처와 첩
1.4. 본 조의 발표
2. 김만중 -『사씨남정기』
2.1. 『사씨남정기』의 작가 김만중
2.2. 『사씨남정기』의 줄거리
2.3. 『사씨남정기』에 대한 선행 연구
3. 작자미상 -『인현왕후전』
3.1. 『인현왕후전』작품소개 및 줄거리
3.2. 『인현왕후전』에 나타난 당시의 시대상
3.3. 『인현왕후전』에서의 처의 입장
3.4. 『인현왕후전』에서의 첩의 입장
4. 첩(妾), 현대적 관점으로 재조명하다.
4.1. 『사씨남정기』- 오늘날의 입장에서 본 ‘첩(妾)’
4.2. 현대의 관점으로 본 『인현왕후전』
본문내용
1. 조선시대의 처와 첩
1.1. 조선시대의 처첩질서(妻妾秩序)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여러 명의 처를 두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을 건국하면서부터 위정자들은 고려시대까지의 제도적 문란을 유교사상을 도입하여 정리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건국 후 조선의 위정자들은 유교사상에 기반을 두고 적처와 첩을 구분하여 처첩질서를 명확히 하려는 정책을 꾸준히 펴 나갔다.
이러한 정책은 실제로 첩이 되는 여성의 신분이 적처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사족신분계층을 옹호하려는 신분관념의 도움을 받아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처첩질서를 확립하도록 하는 정책에 이러한 신분사상이 가미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첩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자손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쳐 첩은 신분에 결함이 있는 존재로 분류되어 가계 계승이나 관직진출에 있어서 소외되었고, 재산상속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적처와 첩을 구분하고 처첩질서를 세우려는 정책은 가정 내에서의 유교적 질서를 수립하려 하였던 측면이 강하였고, 이를 다스릴 권한은 남편에게 있었다.
따라서, 남편이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고 처를 함부로 버리거나 처첩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는 남편에게 형벌을 가하였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처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위를 하였을 경우에 제가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남편이 처벌받기도 하였다.
첩은 정처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첩은 노동력을 제공해야한다는 점에서 노비와 동급으로 취급되기도 하였고 정처인 사대부 여성의 인격과 대우에 따라 그의 처지가 결정되는 존재였다.
첩은 사대부 여성의 부덕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첩 자신이 주체적 인격체로 인정되고 그들의 삶의 이력이 기록되어 전하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반면, 사대부 여성들은 첩을 도덕적으로 규제하며 첩의 존재를 수용하였다.
황수연(2006), 「조선후기 첩과 아내 : 은폐된 갈등과 전략적 화해」, 한국고전여성문학회, pp. 52~56.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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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2006), 「조선후기 첩과 아내 : 은폐된 갈등과 전략적 화해」, 한국고전여성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