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주제와 주제를 선정한 이유
2. 조선시대 일반적인 연애, 결혼 윤리관
Ⅱ. 본론
1. 조선시대 왕가의 사건들
(1) 성종과 폐비 윤씨
(2) 연산군과 장녹수
(3) 중종과 단경왕후
(4) 세종의 며느리 폐빈 봉씨
2. 조선시대 결혼 풍습
(1) 조선 전기의 결혼풍습
(2) 조선 후기의 결혼풍습
Ⅲ. 결론
1. 느낀 점
2. 참고자료
본문내용
주제와 주제를 선정한 이유
인간의 본능 중 하나가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나라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 만큼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정서에 더 강한 애착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사랑이라는 것이 있었을 지 의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자유연애가 허락되지 않고 부모님이 정해준 혼처에 따라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왕가는 이미 어려서부터 혼처가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애를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왕가의 혼례는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왕가의 혼례 중 몇몇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러한 역사적 사건의 결과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우리 조는 조선시대에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왕가의 혼례 또는 연애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기로 했다. 또한 이것을 통해 당대의 풍습, 윤리관을 알아보고 현재와 비교해보기로 했다.
조선시대 일반적인 연애, 결혼 윤리관
먼저 조선시대의 결혼에 대한 기본적인 윤리관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크게 칠거지악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부인을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사항을 말한다. 시부모를 섬기지 않으면 내쫓고, 아들을 못 낳으면 내쫓고, 음란하면 내쫓고, 나쁜 병이 있으면 내쫓고, 말이 많으면 내쫓고, 도둑질하면 내쫓을 수 있었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아녀자가 지켜야할 도리였던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부인의 몸가짐이 얼마나 엄격하고 까다로웠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조는 왕가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서술할 것이므로 왕실의 혼인풍습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왕들은 기본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시행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후궁제도’라고 한다. 후궁제도는 효사상을 강조한 유교문화권에서 특히 발달했다고 한다. 이것은 혈통을 중시했던 문화였기 때문에 정실 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아들을 낳더라도 일찍 죽는 상황이 벌어질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폐비윤씨 사사사건’, ‘성종’, ‘폐비윤씨’ ‘갑자사화’
네이버 피키캐스트 ‘성종’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kkssmm4321&folder=16&list_id=13409892 글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신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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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연산군 [燕山君, Prince Yeon-san]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 2011.4.20, 마로니에북스)
http://blog.naver.com/yechandori?Redirect=Log&logNo=220004309003
http://dpffldi2001.hihome.com/f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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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 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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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근,『주제로 보는 한국사』,고즈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