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의 이두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6.01.05
- 최종 저작일
- 2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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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문화사』는 1931년 10월 15일부터 12월 3일까지, 1932년 5월 27일 부터 5월 3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일련의 글들을 모아서 선집으로 만든 책이다. 그 가운데 「사론」은 집필 연대와 발표 매체가 알려지지 않았으며, 1920년대에 집필되어 『동아일보』등지에 발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재는 조선일보에 1931년과 1932년에 걸쳐 『조선상고사』와 『조선상고문화사』의 일련의 글들을 매일 연재해서 두 권의 중요한 역사서를 남겼다.
신채호는 『조선상고문화사』 「사론」의 「조선 고래(古來)의 문자와 시가(詩歌)의 변천」에서 상고사연구 문제는 전설 시대(傳說時代)의 기록 유무와 어떤 문자로 기록되었는가의 문제라고 전제했다.
수두 시대(藪塗時代)에 문자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증명되지 않고 있으며, 단재는 문자의 발달사를 3시기, 제1기 이두문(吏讀文), 제2기 구결문(口訣文), 제3기 언문(諺文; 한글)으로 구분하였다(541).
<중 략>
고대인들이 이두문을 쓴 지 1천여 년 동안 이처럼 불만스러운 점들을 개정하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당시에는 항상 적국(敵國)에 의한 외환(外患)에 시달렸기 때문에, 정치상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일체의 문자를 적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이같이 불통일(不統一), 불확실(不確實)한글을 쓴 것이고, 또한 삼조선(三朝鮮)이 붕괴하여 열국(列國)이 병립하게 되자 한 조선 내에도 상호 적국(敵國)이 많아서 하나의 명사(名詞)나 하나의 동사(動詞), 하나의 토씨를 더욱 다종다양하게 씀으로써 동부여 사람이 북부여의 이두문을 알지 못하고, 신라인이 고구려의 이두문을 알지못하였던 것이다.
이두문을 이처럼 불통일(不統一), 불확실(不確實)한 방식으로 만들어 쓰게 된 것은, 당시 사람들의 학적(學的) 재지(才智)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로 정치상의 장애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이다.
참고 자료
단재 신채호 원저, 『조선상고문화사(외): 독사신론, 조선사연구초(草), 사론(史論), 부
록/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 박기봉 옮김, 서울: 비봉출판사,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