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2. 정여립, 천하공물(天下供物)을 말하다
1) 정여립의 유년시절
2) 정여립의 정치활동
3) 지방에서의 활동과 대동계의 조직
4) 모반사건
5) 기축옥사
6) 의의
3. 허균, 율도국(硉島國)을 꿈꾸다
1) 허균의 유년시절
2) 허균의 정치활동
3) 급진적 개혁사상
4) 역모로 몰리다
5) 의의
4. 나가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정여립(鄭汝立)과 허균(許筠)은 조선조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대의 촉망받는 인재들이였으며, 훗날에 각각 조선의 왕조체재와 지배체제를 부정한 인물들이다. 그들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그들을 역적이라 하여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많다. 이에 필자는 정여립과 허균을 역적이 아닌 혁명가로 보는 입장으로써, 그들의 활동을 알아보고 싶었다. 따라서 본 발제에서는 정여립의 활동과 기축옥사(己丑獄死), 허균의 활동과 그가 역모로 몰리는 과정 등을 통해 그들이 꿈꿨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는지, 왜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당시의 시대상황과 함께 알아보고, 그들을 재조명해 보려한다.
2. 정여립, 천하공물(天下供物)을 말하다
1) 정여립의 유년시절
정여립은 첨정을 지낸 정희증(鄭希曾)의 아들로 1546년(명종 1)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백(仁伯)이다. 정여립은 어려서부터 무예나 활쏘기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경사(經史)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문에도 두루 능통하였다. 문무를 두루 겸비했던 셈이다. 그러나 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포악하고 잔인했다는 내용이 많은데, 어린 시절에 자신의 악행을 고자질한 여종의 배를 갈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15세 때는 익산 군수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고을 일을 맡아보았는데 당시 아전들은 그의 부친보다 정여립이 업무를 처리할 때 훨씬 부담을 느꼈다고 했을 정도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여립이 기백이 굉장하고 말솜씨가 좋아서 입을 열기만 하면 시비를 불문하고 좌중들이 칭찬하고 탄복하였다’고 기록하여 그의 기백과 언변이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2) 정여립의 정치활동
정여립이 살았던 16세기의 조선은 4번의 사화가 연달아 일어났고, 훈구파(勳舊派)가 물러나고 사림파(士林派)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하면서 지배체제가 동요하던 시기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지배계급으로서의 양반 계층은 사회 변화의 흐름을 등한시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지위를 보다 공고히 하고자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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