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를 통한 신라 경덕왕대 사회상 파악
- 최초 등록일
- 2015.10.19
- 최종 저작일
-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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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유사를 통한 신라 경덕왕대 사회상 파악"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삼국유사 경덕왕代 설화 소개
3. 삼국유사를 통한 경덕왕代의 사회상 파악
1) 불교를 중시하는 왕
2) 불교에 의존하는 백성
3) 한국적 요소와 결합한 불교
4.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역사서를 떠올려 보면, 대부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논할 것이다. 이 역사서들은 고려 이전의 역사를 다루는 역사서로 고려시대에 제작되었는데, 무엇보다 신라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 두 역사서는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많은 차이점을 가진다. 삼국사기는 1145년 왕명으로 김부식과 더불어 그와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유교적이며 합리적인 사관을 토대로 했으며, 따라서 신화나 설화 같은 비합리적인 요소들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이 역사서는 고대 역사의 숨결을 말살했다. 반면, 1281년 승려 일연에 의해 쓰인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비해 자유롭고 생생함이 넘친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서 제외했던 설화와 신화들을 과감 없이 전한다.
<중 략>
지금까지 삼국유사 경덕왕代의 설화를 통해 그 당시 사회상을 유추해 보았다. 그 당시 불교는 왕은 물론 백성들의 삶에까지 녹아있었다. 왕은 중과 사찰에 보시와 공양을 즐겨했으며, 중을 궁궐로 초대해 불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심지어 정치와 연관되는 문제들까지 승려들에게 의견을 들었다. 백성들도 불교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중이 될 수 있었으며, 중이 아닌 일반 백성들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백성들에게 불교는 매우 친근한 종교였고, 삶의 일부였다. 이러한 열광적이고 보편적인 믿음은 불교의 융합과 관련이 있었다. 불교가 그 나름의 모습을 유지하며, 동시에 치병이라는 샤머니즘적인 요소와 한국 전통 신앙이라는 요소를 포용했다.
필자는 역사가의 역할이 탐정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일어난 온전한 형태의 사실에 접근하기 위해, 사료라는 실마리를 하나하나 찾아내 재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화나 전설, 설화 또한 역사를 구성하는 실마리이다. 과거의 사람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만든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존재하며, 또한 그 이야기 속에는 당시 사회상이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추출해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참고 자료
리상호, 북역 삼국유사, 신서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