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조선의 개항과정, 미일화친조약과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
- 최초 등록일
- 2015.07.24
- 최종 저작일
-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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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一. 머리말
二. 일본의 개항과정과 개혁정책
1) 미일화친조약의 체결
2) 메이지유신의 단행
三. 조선의 개항과정
1) 흥선대원군의 실각과 고정의 친정
2) 운요호사건의 발발
3)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의 체결
四. 맺음말
본문내용
一. 머리말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유럽 각국과 미국에는 근대적 산업문물이 전파되었다. 산업혁명으로 각종 산업 규모가 커진 서양 열강들은 내수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원료를 공급해줄 식민지와 공산품을 팔 시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양 열강들이 앞 다투어 새로운 시장과 식민지 공략에 나서면서 아시아ㆍ아프리카 지역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표적이 되었다. 1840년 중국 개항 유도 과정에서 발발된 아편 전쟁에서의 청의 패배는 조선과 일본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일본과 조선이 쇄국정책을 고수하게 만들었다.
二. 일본의 개항과정과 개혁정책
1) 미일화친조약의 체결
19세기 중반 서부 개척을 완료한 미국은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향유고래 포경산업이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태평양 너머의 중국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장기간 원거리 조업과 중국 시장 공략 위한 기항지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는데, 지정학적으로 일본의 개항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1853년 미국의 동인도 함대 사령관인 페리 제독이 군함 4척을 이끌고 막부가 있는 에도(江戶) 근처 우라가(浦賀)항에 나타나 미국 대통령의 국서를 교부하고 합중국의 함선이 일본에서 연료와 식량 등의 물자를 보급 받을 수 있도록 일본의 항구들을 개방할 것을 강요하였다. 미국의 강압에 굴복한 에도막부는 결국 1854년 ‘미일화친조약(가나가와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시모다와 하코다테가 개항되었고, 미국 선박에 대한 식량과 식수ㆍ연료의 보급, 미국 난파선과 표류민의 구조, 각종 품물의 조달, 미국 외교관의 시모다 주재, 최혜국(最惠國)대우 등이 허용되었다. 1857년 미국은 일본에 영사재판권(領事裁判權)도 요구하였고, 1858년 영사재판권을 허용하는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 이후 영국ㆍ네덜란드ㆍ프랑스ㆍ러시아 등 다른 서양 열강들과도 비슷한 내용의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참고 자료
김희영, 『이야기 일본사』, 청아출판사, 2006
『신편 한국사 38권』, 국사편찬위원회, 2000
『신편 한국사 37권』, 국사편찬위원회,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