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의 얼이 살아 숨쉬는 수원화성, 화성행궁, 수원 역사박물관 견학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5.05.19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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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수원, 생소한 도시이다. 수원이라고 하면 성균관대학교 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나에게 이번 기행은 ‘수원’이라는 도시와 정조대왕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2014년 11월 7일, 하늘은 푸르고 산은 울긋불긋하던 어느 날, 나는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과 함께 수원을 점령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올 가을 마음 놓고 제대로 단풍놀이 한 번 하지 못한 나에게는 과제라기보다는 가을 소풍을 가는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수원화성이었다. 수원역에서 약 10여분 버스를 타고 달리면 장안문에 도착할 수 있다. 장안문은 화성의 정문으로서 백성들이 영원토록 태평성대를 누린다는 뜻이다.이름조차 백성을 향한 정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을 들릴 때, 그 긴 어가의 행렬이 바로 이 장안문을 통과하였다고 생각하니 짜릿했다. 우리는 바로 통합권을 구매하고 화성 성곽길에 올랐다. 그저 알록달록한 가을 풍경에 취해 의미 없이 수원화성을 걷고 있을 때,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 오셨다. 그냥 지나치려던 찰나 할아버지께서 ‘그냥 걸으면 한옥마을 걷는 거랑 뭐가 달라’ 라는 말에 다시 뒤를 돌아 보았다. 바로 수원화성에서 일하고 계신 문화해설사분이셨다. 우리는 직접 제작하신 자료와 함께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화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설명을 다 듣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화성은 실로, 대단한 건축물이었다.’
우리 학과 교수님께서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피라미드와 파나마 운하가 건설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을지 생각하라’
이 웅장한 성곽을 짓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을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정조와 정약용 외 많은 실학자들과 노동자들의 땀과 정성이 모두 이 수원화성에 녹아 있었다.
참고 자료
이상각, 『이산 정조대왕, 조선의 이노베이터』, 추수밭, 2007
최홍규, 『정조의 화성 경영 연구』, 일지사, 2005
정해득, 『정조시대 현륭원 조성과 수원』, 신구문화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