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 화약무기와 군사혁명의 ‘신화’
2. 화약무기의 ‘코스트’에 대한 사례 : 17세기 조선조 소총의 ‘획득가’와 ‘생산량’
3. 적응과 변용 : 사르후 전역에서의 명군의 화기운용 양상
4. 결론 : Mythbuster
본문내용
서론 : 화약무기와 군사혁명의 ‘신화’
일반적으로 유럽 내부에서의 화약무기 도입이 가져온 여러 가지 변화상 중 가장 의미있는 현상으로 간주되는 것은 기사군 중심의 중세적 군대가 다수의 보병 중심으로 편제된 근세적 군대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과서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점을 들어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실제로 화약무기의 도입이 대규모 보병군으로의 군 구조 재편을 불러온 결정적인 소인이었는가? 인과관계(혹은 선후관계)가 잘못 파악되었거나, 무기체계 면에서 화약무기 외의 다른 시도가 화약무기 이전에 작용하지 않았는가? 또한 중근세 이전이나 유럽 이외에서 화약무기의 도입이 아니더라도 유사한 성격의 ‘변환(Transformation)’은 일어나지 않았는가? 둘째, 비유럽의 화약무기 변환은 동시기의 유럽에 비해 결정적이지 못했으며, 기술도입과 적응의 수준 면에서 볼 때 미흡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인가? 셋째, 화약무기의 도입은 대규모 보병군으로의 전환을 단기간 내에 이끌어낼 정도로 ‘저렴’한 것이었는가? 과연 화약무기의 도입이 중세적 군대, 혹은 유럽외적 사례를 함께 논의한다면 근세 화약무기 도입 이전의 전단계적 군대에 비해 비용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병원 양성에도 국체 차원에서의 공력이 경감되는 효과를 가져왔는가? 세 개의 의문점을 종합하자면, ‘화약무기의 도입’에 의한 ‘군사체계의 단기적 변환’이라고 하는 현상은, ‘현저히 높은 기술수준’을 가진 ‘군사혁명 이후’의 유럽 군사체계의 우수성을 따라잡기 위해 非유럽세계 전반에도 ‘예정’되어 있었던 ‘국제표준’이었던 것인가?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적은 단순히 개개의 시간대와 지역이 갖는 역사적 맥락을 감안해 기술적 발전상과 군사체계의 변환을 조망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위 ‘군사혁명이론’의 논리구조로 분석되는 ‘우월한’ 기술들이 중근세시기에 어떤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 어떻게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는지, 또한 수용되어 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해양팽창’의 시기에 문명권, 지역, 국가간의 활발한 기술교환과 ‘병렬화’ 현상이 있었던 것은 뽑을 수 없는 사실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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