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가족과 젠더의 역할, 변화 가능한가
- 최초 등록일
- 2015.02.17
- 최종 저작일
- 20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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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근대가족’의 형성과 그 변화, 그리고 가족 내에서의 남녀의 역할
2. 서서히 해체되고 있는 근대의 ‘가족’개념과 그 범위
3. 해체되고 있는 ‘가족’의 범위에서 본 ‘동성혼’, 그리고 ‘젠더 역할’
본문내용
중세 교회는 결혼생활에 뚜렷한 종교적 성격을 부여하며 그 당위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중세 교회가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 수도사와 수녀였고 교회가 예찬하고 추앙한 것은 결혼 생활이 아니라 독신생활 이었다. 이는 사회 저변에 정착된 이념적 전통이었다. 즉, 결혼과 가정생활을 종교적으로 수용하였지만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는 독신생활에 월등한 가치를 부여하며 그 명분과 의미를 제한시켰고 이는 나아가 결혼을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중세 교회의 메커니즘 속에서 결혼은 결코 비난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권장과 선망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가들에게 결혼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 산물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위해 내린 신성한 제도이며 가정은 신앙과 인격수양의 으뜸가는 배움터로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결혼은 정결하고 기강 잡힌 사회를 만들었고, 가정은 신앙교육의 현장이자 사회교육의 요람이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은 성직자의 결혼을 허가했고, 따라서 성직자 가정이라는 전례없는 가족형태가 등장했다. 특히 여성에게는 성직자의 배우자라는 새로운 영역이 제공되어 제한적이나마 자아구현을 위한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중세에 이어 여전히 사회의 한 구심점이자 건재한 영향력과 권위를 가진 성직자의 정식아내가 된다는 것은 당시의 여건에서는 비교적 뚜렷한 정체성을 통한 자아구현의 하나의 기회로 볼 수 있었다. 때때로 그네들은 마을소녀의 교육을 담당했고 빈민구호단체의 일원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카타리나 첼을 비롯한 일부 루터파 성직자의 아내들은 교리와 교회 운영에까지 자신들의 소신을 공개적으로 고집하며 만인사제주의가 지향한 영적평등을 여성에게도 확대 적용시켰고, 이는 독일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종교개혁은 이혼과 재혼의 조건을 확대시켰다. 결혼을 성례의 하나로 간주했던 중세교회에서는 이혼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고 심지어 배우자의 간통마저도 이혼이 아닌 영구적 별거로 취급받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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