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의 연구감상
- 최초 등록일
- 2015.01.05
- 최종 저작일
-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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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부터 개관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간송문화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서 매년 열리던 간송미술전시가 처음으로 외부로 나온 의미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또한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우리나라 최고의 유물들이 전시되는 것이기에 많은 기대와 눈길을 끌었다. 기대했던 것과 같이 DDP에서의 간송문화전은 회화, 공예, 도자 등 쉽게 볼 수 없었던 훌륭한 문화재들로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전시장을 둘러볼 때 수업시간에 배웠던 최고급품의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이나 <청자오리형연적>같은 작은 청자 문방구들도 있었고 <분청사기박지철채연화문병>과 같은 분청사기 유물들도 있었다. 주로 백자보다는 청자유물이 대부분 이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색깔 속에서 환한 빛을 내며 눈에 띈 유물은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백자였다. 조선시대 백자를 대표하는 유물로서 고려시대 최고 청자로 꼽히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함께 나란히 전시실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백자는 조선시대 18세기 후기에 제작된 백자로 현재 국보 294호로 지정되어있다. 고려청자의 비색과 화려한 운학문 상감기법이 새겨진 <청자상감운학문매병>옆에서 단순한 문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자만큼의 아름다운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때문에 고려청자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멋을 가지고 있는 조선 백자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유는 간송 전형필이라는 사람의 노력 덕분이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시기에 일본에게 빼앗기는 문화재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의 노고 덕분에 국외로 반출되어가는 많은 문화재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36년 경성 미술 구락부 경매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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